재계 1·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경쟁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 누가 가져갈 것인지도 관심이었지만 낙찰 가격이 얼마나 될지도 관전 포인트였다.
당초 업계에선 감정평가액(3조3346억원)을 1조원 이상 웃도는 4조원 후반에서 5조원 초반 선에서 주인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이상 쓰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입찰 결과 재계 2위인 현대차가 1위인 삼성전자를 누르고 한전 부지의 주인이 됐다. 현대차는 전국민이 깜짝 놀랄만한 금액(10조5500억원)을 써냈다. 3.3㎡ 당 가격은 4억3882만원으로 국내서 가장 비싼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부지의 공시지가인 3.3㎡당 2억5455만원을 크게 넘어섰다.
논란은 있지만 현대차의 한전부지 매입은 땅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도 됐다. 현대차 측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강남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악재에도 연평균 9% 이상을 기록했다"며 "10년~20년 후를 내다보면 부지 매입가격은 결코 과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천문학적 금액을 쓰면서 한전 부지 인근 상가와 아파트, 오피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인근 상가의 경우 3.3㎡ 당 1000만원 가량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대형 개발사업이 가시화된 것도 호재인데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강력한 투자의지를 보여 주변 부동산 가치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가됐다"고 말했다.
◇ GBC로 탈바꿈.. 부동산 개발 호재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조성할 예정이다. 본사를 비롯해 자동차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컨벤션센터, 한류체험공간 등도 지을 계획이다.
현대차는 연간 10만명에 달하는 자동차 산업 관련 외국인을 유치하고, 대규모 관광객이 이 곳을 방문하면 경제적 효과와 함께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GBC를 짓는데 기부채납 2조원, 건축비 2조2400억원, 금융비용 및 각종 세금 1조3200억원 등 총 5조5000억원 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반해 현대차는 부대비용을 포함해 4조~5조원 가량의 개발 비용이 필요하지만 쇼핑몰과 호텔 등 외부 분양이나 임대를 통해 2조~3조원 정도 회수할 수 있어 실제 비용은 2조~3조원 정도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 동안 수용인원이 4000~5000명에 불과한 양재동 사옥을 사용해왔다.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는 자리가 없어 외부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고, 고객 및 언론 초청행사 등을 치를 장소도 마땅치 않아 해외에서 진행하곤 했다.
또 2006년 뚝섬에 110층 규모의 신사옥 건립을 추진했지만 서울시의 각종 규제로 무산된 바 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사기위해 10조55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금액을 써낸 이유다. 최근 재계의 이슈였던 삼성과 한화의 빅딜에서 한화가 삼성테크윈 및 삼성의 화학계열사를 사들이는데 최대 2조원 정도가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이처럼 높은 가격은 비판과 함께 현대차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부지 인수에 참여한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가가 급락했다. 낙찰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 동안 시가총액 8조4000억원이 날아가기도 했다.
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한 주주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이 주주는 정 회장이 한전 부지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 부지 인수는 시세차익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100년을 내다본 결정이었다"며 "고발과 관련해선 법적인 부분이라 진행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