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으로부터 분기보고서에 이례적인 '의견 거절' 판정을 받으면서 건설업계와 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대우건설 내부와 투자자들은 시쳇말로 '멘붕(멘탈 붕괴)'이다. 작년 회계 부정으로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지도 얼마 되지도 않아서다. 또 다시 재무 투명성에 타격을 입는 건 치명적이다.
그런데 딜로이트안진이 최근 대우조선해양 부실감사로 검찰 수사까지 받았던 일련의 배경을 톺아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의견 거절'이 회계법인으로서의 신뢰도를 만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회성 이벤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강화 과정에서 과점 경쟁을 하는 대형 회계법인 사이의 알력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란 관측도 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안진, 대우건설에 이례적 '의견 거절'
안진은 지난 14일 대우건설이 내놓은 3분기 보고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며 분기 재무제표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의결 거절' 판정을 내렸다. 상장한 대기업에 대한 감사나 재무제표 검토 결과 '의견 거절'이나 '한정', '부적정' 등 '적정' 이외 판정이 내려지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안진은 검토보고서에 "공사 수익, 미청구(초과청구) 공사, 확정계약자산(부채) 등 주요 사안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판단할 충분하고 적합한 증거를 제시받지 못했다"라고 이유를 적었다.
이어 안진은 "국내 재무제표 검토준칙에서 정하는 절차를 검토보고서일 현재까지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며 "또 준공 예정원가의 적절한 추정변경을 위해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내부통제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재무제표를 검토할 때 필요한 재무적 자료를 대우건설이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외감 법인으로서 재무제표가 온전하다는 보장을 하지 못하겠다는 게 안진이 밝힌 입장이다.
안진 측은 "의견 거절은 이번 분기보고서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것일뿐"이라며 확대해석은 경계했다. 이어 "감사 결과에 따른 의견 거절이나 '한정', '부적정' 의견과는 달리 재무상의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해 달라는 의미에서 분기 재무제표에 대해 검토 의견 거절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신문로 대우건설 사옥(사진: 대우건설) |
◇ '안진과 삼일' 그리고 '대우조선과 대우건설'
이에 앞서 대우건설은 작년 8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0억원, 전·현직 대표이사 해임을 권고 등의 제재를 받았다. 회계 과정에서 공사 손실 충당금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 대손충당금을 쌓고 손실로 처리해야 하는데도, 이를 제 때 반영하지 않는 등 2500억원(확정) 규모의 분식이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3년 말 대우건설 내부 제보를 토대로 회계감리에 착수해 이 건설사 분식 혐의를 들여다봤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시 외부감사를 맡고 있던 삼일회계법인에도 과징금 10억원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삼일은 이 분식회계 문제로 대우건설의 외부감사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회계 문제를 일으킨 기업은 금융감독 당국이 지정하는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맡게 되는데 이 때 지정을 받은 게 이번에 '의견 거절' 판정을 내린 안진이다.
반대로 안진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외부 감사를 맡았다가 부실 감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매년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내놓다가 분식회계 의혹이 터지자 뒤늦게 작년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약 2조원을 2013년, 2014년 재무제표에 나눠 반영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안진이 대우조선해양 외부감사에서 제외되면서 외감 자리를 차고 들어간 게 삼일이다. 삼일은 과거 안진이 맡았던 대우조선에 대해 올해 8월 반기보고서에서 '한정' 의견을 냈다. 안진이 외감을 맡았던 시기의 재무제표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한 증권업계 전문가는 "서로 외부감사를 바꿔 맡게 된 회계법인들이 과거 분식 혐의를 받은 후 연속선상에 있는 재무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검토 의견을 주고 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금융당국의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회계법인이 스스로 신뢰도 우위를 입증하기 위해 종전보다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 결과인 듯하다"고 말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이번 대우건설 분기 재무제표에 대한 의견 거절에 대해서도 "안진이 종전과 달리 최대한 보수적인 태도로 감사 용역을 수행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 대우건설 "연말 감사까지 충분히 소명할 것"
실제 올해 들어 외부감사를 맡은 안진은 대우건설에 통상보다 배 가량 많은 15명의 인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보수도 12억9000만원으로 작년과 재작년 삼일의 보수(6억5000만원)의 2배 수준이다. 지정 감사이기 때문에 더 들여다봐야할 게 많다는 게 이유다.
대우건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안진은 3분기까지 별도재무제표 검토 5520시간, 연결재무제표 검토 1935시간 등을 수행했다. 이는 삼일이 수행한 작년 한 해 수행한 감사용역 시간(5340시간, 1360시간)을 이미 넘는 것이다.
대우건설은 의견 거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1분기와 상반기 재무제표에 대해서도 '적정'의견을 낸 안진이 갑작스럽게 의견 거절을 낸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발도 나온다.
대우건설 측은 "2013년말부터 2년 반이라는 유례없는 기간 동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회계에 대한 특별감리를 받은 뒤 회계투명성 강화조치에 발맞춰 국내 어느 건설사보다도 투명한 회계처리를 해 왔다고 자부한다"며 "법정관리나 상장폐지 기업이 받는 의견거절 판정 조치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안진이 준공예정원가 추정을 위한 세부자료를 요청해 근거를 제출했는데, 이에 대해 이견이 발생해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 소명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발생한 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우건설 측은 "다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주주나 채권단에 심려를 끼치게 된 것에 사과를 전한다"며 "내년 3월 기말 감사 이전까지 감사인이 요청한 자료에 대해 충분히 소명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