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험이 없는 우리 부처 순수혈통의 관료가 6년만에 임명됐다는 사실은 일선 공직자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자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에 최정호 전 국토부 제2차관이 내정되자 국토부 노동조합은 이례적으로 환영성명을 냈다.
몇년 전 한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오버랩된다.
"이제 장관(되는) 꿈꾸는 사무관들은 없어요. 비전이 없으니까. 젊은 사무관들 중에는 일찌감치 연봉 많이 주는 대기업 같은 곳으로 옮기려고 하잖아요."
이 고위관계자로부터 푸념섞인 얘기를 들은 것이 4~5년 전이지만 이런 분위기는 여전하다. 장관 자리가 더는 능력있고 운까지 타고난 '엘리트 공무원'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것. 어공(어쩌다 공무원), 늘공(늘 공무원)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중앙부처 장관 등 요직을 정치인 혹은 정치권과 연이 있는 학계 출신들이 차지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국토부 장관에 내부 공무원 출신이 임명된 것은 2013년 3월 퇴임한 권도엽 전 장관 이후 처음이다. 이후 서승환 전 장관은 학자, 유일호 전 장관은 정치인, 강호인 전 장관은 기획재정부 출신, 그리고 정치인 출신의 김현미 장관으로 이어진다.
외부 출신은 물론이고 타 부처 출신에게도 장관 자리를 넘겨줘야 했던 국토부의 남모를 '설움(?)'이 노조의 환영 성명에 담긴 셈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국토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부처 가운데서도 맏형이자 경제부총리를 겸직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 역시 정도의 차이일뿐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번 정부들어 김동연 전 장관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홍남기 장관까지 정통관료가 잇따라 선임된 사례는 예외적일 정도다.
지난 10년 동안 강만수 장관과 윤증현 장관을 빼면 정통관료 출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재완, 현오석, 최경환, 유일호 전 장관 등 정통관료보다 학자 출신에 가깝거나 정치인 출신이 상당기간 장관 자리를 지켜왔다.
그럼에도 전문성 있는 '정통관료'보다 '힘있는 정치인(혹은 정치권과 연이 깊은 학자)' 장관 밑에서 일하는게 훨씬 수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공무원들에겐 또 하나의 아픈 현실이다.
이 역시 앞서 푸념을 늘어놓던 부처 고위관계자의 얘기다. "사실 정치인 출신 장관이 오면 일하기가 더 쉬워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인사청문회도 그렇고 국정감사 때도 동료였던 정치권 출신 장관들에겐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더라고요. 법안처리도 마찬가지이고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인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장관 자리가 전문성보다 정무적 감각이 더 중요해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정치인 출신 장관이야 한번 들렀다 떠나면 그만이다. 모든 일을 다 잘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정권의 핵심 아젠다를 세팅하거나 혹은 속된 얘기로 '한방'만 있으면 잘했다는 칭찬도 받는다.
하지만 '늘공'에겐 그렇지 않다. 자리를 떠나도 늘 정책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결국 정책으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를 통해 후배들에겐 '늘공'의 비전을 보여줘야 하고 롤모델도 돼야 한다.
최정호 장관 내정자의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