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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집살이 in 유럽]⑧'사회주택 천국' 네덜란드에 던져진 숙제

  • 2019.08.07(수) 14:00

<예룬 반더피어 암스테르담사회주택연맹 부대표 인터뷰>
사회주택협회, 세금부담 높아져 공급 여력 축소
대도시 수급 악화, 사회주택 비중↓·저소득층↑
사회문제도 우려…낀 중간층 주거복지 사각지대

[암스테르담=노명현 원정희 배민주 기자] "영리 목적은 없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회주택협회 관계자들은 특히 이 부분을 힘주어 말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점은 사회주택협회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주택 임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임대사업자들과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돈을 벌어야 한다. 사회주택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재투자를 통해 기존 사회주택을 개‧보수하고, 새로운 집을 공급해야 하는 까닭이다. 딜레마다.

주택건설 비용을 비롯해 새 주택을 공급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반면 저소득‧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주택인 만큼 임대료를 올리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 여력을 유지하는 게 이들에게 닥친 현실적 고민이다.

여기에 갈수록 사회주택을 필요로 하는 취약 계층이 늘면서 거주자가 소득 하위 계층에 집중되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로 인해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끼인 계층'이 생기고 있다는 점도 던져진 숙제다.

◇ 사회주택협회에 드리운 '세금 그늘'

예룬 반 더 피어(Jeroen Van der Veer) 암스테르담사회주택연맹(De Amsterdamse Federatie van Woningcorporaties·ARWC) 부대표를 만나 이같은 사회주택의 현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암스테르담사회주택연맹은 암스테르담 사회주택협회를 대변하고 지방정부 등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얘기는 세금문제였다.

의외였다. 비영리단체이고 어찌보면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정부의 공공정책을 대신 수행하는 기구인데 세금이라니.

예룬 반 더 피어 부대표는 "네덜란드 정부는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2012년부터 사회주택협회가 얻는 임대수익의 25%를 세금으로 부과하기 시작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 인해 매년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사회주택협회가 부담하는 세금이 연간 20억유로(약 2조6400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회주택 거주자의 네달치 정도 집세를 세금으로 내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예룬 반 더 피어 암스테르담 사회주택연맹 부대표(사진: 배민주 기자)

그는 "다국적 기업들에게서 발생한 세금문제로 사회주택협회들도 중앙정부에 세금을 더 내야하는 상황이 됐다"며 "협회의 재정이 안정적이라고 해도 이들의 추가 투자(주택 공급) 여력은 이전보다 크게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스테르담도 사회주택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회가 사회주택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는 협회로부터 거둬들이는 과중한 세금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택협회들은 세금 부담 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사회주택 공급 확대 노력이 소극적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네덜란드 사회주택 비중은 34.1%로 2000년(36.7%)과 비교해 2.6%포인트 낮아졌다.

이처럼 재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주택협회는 그들의 역할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반 더 피어 부대표는 "지방정부와 사회주택입주자연합이 4년 마다 사회주택 공급계획을 세우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며 "최근 협의를 통해 기존보다 주택 공급량을 2배 늘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주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사무실이나 사회복지시설, 산업시설 등을 집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사회주택을 늘려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무엇보다 땅을 저렴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최근 토지임대부 주택(정부가 토지를 저렴하게 빌려주고 협회는 여기에 사회주택을 건립해 운영하는 것)도 사회주택을 늘리는 방안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 부족한 사회주택의 '나비효과'

사회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노력에도 주택 부족 문제는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실제 연맹 뿐 아니라 우리가 만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관계자들은 최근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그렇듯(서울 및 수도권 과밀화 현상) 유럽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 역시 거주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반면 주택 공급량은 한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사회주택협회는 사회주택 공급 대상을 소득기준 하위 30% 대상으로 제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사회주택 비중이 60~70%에 달할 당시엔 중산층도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등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 수단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사회주택 비중이 30% 이상이지만 최근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암스테르담 사회주택연맹과 여러 사회주택협회들은 사회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사진: 배민주 기자)

반 더 피어 부대표는 "과거에는 사회주택 입주자를 선정할 때 소득기준이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입주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소득이 4만~6만유로(5300만~7900만원, 세전 기준) 수준이면 입주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회주택 공급 대상이 소득 하위계층에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특히 사회주택 입주 대상에는 포함안되는 소득수준이지만 그렇다고 민간임대 시장에서 임차하기는 부담스러운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민간 임대시장 임대료를 규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임대료는 크게 올랐다. 실제 사회주택 임대료는 주택 위치와 집 상태 등에 따라 최대 월 720유로(95만원) 수준인 반면 일반주택 임대료는 월 1800유로(240만원)에 달한다.

반 더 피어 부대표는 "중산층 중에서도 사회주택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은 소득 기준에 의해 입주가 어렵다"며 "그렇다고 집을 사기도 쉽지 않아 일반주택을 임대해 사는데 월세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한 한인 유학생은 "집을 매입했을때 이자와 임차료 중 어떤 게 부담이 덜한지 따져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그 만큼 임대료 부담이 크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사회주택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주택 천국인 네덜란드도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공급이나 임대료 상승 등의 이슈는 피해가기 어려운 듯 보인다. 대부분 국가들의 대도시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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