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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역설]⑤직장 근처에 살고 싶다니까!

  • 2019.12.03(화) 16:26

저녁 있는 삶·맞벌이 증가에 '직주근접' 수요 확대
서울 외곽 '3기 신도시' 서울 수요 분산에 한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의외의 곳에 영향을 미쳤다.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는 직장인들이 늘었고 이는 직장과 가까운 곳, 출퇴근 거리가 짧은 곳(직주근접)에 위치한 집에 대한 선호도를 더 키웠다.

여성의 취업이 증가하면서 젊은 세대의 맞벌이가 늘어난 점 역시 직주근접에 대한 수요를 높인 요인이다.

정부가 30만 가구 규모의 3기 신도시 공급을 내세웠지만 이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 역시 근본적으론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3기 신도시가 1,2기 신도시보다 서울과 가깝다고는 하지만 서울 수요를 분산하기 어렵다고 보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 직장은 서울인데, 외곽에서 살라고?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적 풍토가 확산되자 출퇴근이 수월한 곳에 주택을 마련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공공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서울시 직장인의 출퇴근 트렌드 변화를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서울 직장인의 출근 시간은 늦어지고 퇴근 시간은 빨라졌다.

집과 회사가 같은 자치구 내 위치한 직장인은 2008년 전체의 46%에서 2018년 51%로 10년 만에 5%포인트 늘었다. 직주근접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통근거리가 짧을수록 행복지수도 올라갔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꾸준히 집값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도 직주근접 수요와 직결된다. 마용성은 '직주근접 프리미엄' 지역이라 불릴 정도로 업무중심지구와의 접근이 용이해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매매가격을 보면 올 하반기(6월 3일부터) 들어 서울 서북권이 1.12%, 도심권이 0.98%, 동북권이 0.88%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이들 권역에 각각 속해 있는 마포구는 1.44%, 용산구는 1.02%, 성동구는 1.12%씩 올랐다.

 

자연스레 서울에서의 내집마련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서울의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고, 공급 부족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외쳤던 정부도 결국엔 3기 신도시 조성 카드를 꺼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신도시를 조성해 서울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구상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공급카드를 꺼냈고 1, 2기 신도시에 비해 비교적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조정하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이지만 실질적으로 서울 수요를 분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정부는 3기 신도시로 지정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과천시 과천 ▲고양시 창릉 ▲부천시 대장 등이 '서울과 평균 2km 거리'에 위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과의 거리를 보면 1기 신도시는 평균 5km, 2기 신도시는 평균 10km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서울 경계로부터 거리일 뿐 종로, 중구, 강남구 등 중심 업무지구와는 훨씬 멀다.

이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9월 열린 신도시 정책 반대 집회에서 "직장은 서울인데 집만 주변 신도시에 지으면 누가 이사를 가겠느냐"며 3기 신도시의 실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직주근접'에 대한 수요가 예상보다 크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앞서 1, 2기 신도시 교통대책의 실패를 교훈 삼아 3기 신도시의 경우 교통대책을 함께 내놓은 점은 눈여겨볼 만 하다.

앞서 1기 신도시(1989년), 2기 신도시(2003년) 때는 교통망 확충 계획이 뒤늦게 수립되면서 주민들이 '교통 지옥'에 시달렸고 일부 지역은 지금도 교통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런 시행 착오 끝에 3기 신도시는 '선교통-후개발' 원칙을 내세웠다. 신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광역교통망 축을 중심으로 신규 택지를 개발하고, 입주 시 교통 불편이 없도록 2년 빨리 교통대책을 수립‧시행하겠다는 게 골자다.

◇ 교통망 대책 내놨지만, '어느 세월에'

문제는 이 역시도 기약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신도시는 실제로 삽을 뜨기 전(철도 착공 등)까진 믿을 수 없다"며 "장화신고 들어가서 구두 신고 나오려면 10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신도시 성패를 가를 광역교통망 대책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사업시행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관련기관과 여전히 광역교통 개선대책 수립을 위한 의견 수렴 중이다.

의견 수렴이 끝나면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이하 대광위)쪽에 심의 요청을 하고, 대광위가 한국교통연구원(KDTI)을 통해 검토한다. 이후 대광위에서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 뒤 최종 발표를 해야 한다.

절차가 한참 남은 셈이다. 대책을 수립해 교통망을 확정한 이후에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 실시설계 등 절차를 밟고 착공하려면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3기 신도시는 2021년~2022년께 분양하고 2025년께 입주 예정인데 입주 시점에 광역교통망을 개통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부 교수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라는게 계획대로 진행되기가 만만치 않다"며 "화성 동탄, 일산 등 2기 신도시의 교통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3기 신도시 조성 계획 때 교통대책을 함께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중교통망만 지어놓으면 되는 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논란도 계속될 수 있고 다음 정권이 사업을 어떻게 받아서 진행할 건지도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도 "3기 신도시는 1‧2기 신도시보다 서울과 근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개발만 잘 되면 서울에서 청약 가점이 낮은 수요자나 1기 신도시 중 베드타운으로 분류된 지역 주민들이 이동해 수요 분산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도 "만약 입주 시점에 교통망 개통이 미뤄지면 입주자들이 불편을 감수하게 되면서 신도시 교통 문제가 또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도시 개발의 첫 관문인 토지 보상 또한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말 3기 신도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과천 등 4곳에 대한 지구 지정을 완료하고 감정평가를 거쳐 내년부터 토지보상에 들어간다.

최근 대토 보상(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을 땅으로 받는 방식) 축소에 대해 일부 토지주들이 국회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신도시 개발의 첫 관문인 토지 보상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공급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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