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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세보다 매매가 싼 신축빌라의 비밀

  • 2019.12.16(월) 09:26

불법 주거시설인 근린생활시설 얄팍한 속임수로 현혹
높은 취득세·중개수수료에 이행강제금 리스크 '요주의'

"전세가 1억 9000만원인데 매매로 하시면 1억 8000만원에 드려요. 딱 한 세대가 남아서 취득세를 지원해 드리는 거예요."

집안 사정으로 다급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30대 중반 A씨. '구경하는 집' 팻말이 펄럭이는 신축빌라 2층집에 들어서자 건축주의 대리인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 신축빌라는 전체 6층 규모의 필로티 구조로 1층은 상가 1곳과 주차장, 2층부터 6층까지는 주거용으로 분양 중이었다.

이 대리인은 다른 세대들은 2억원이 훨씬 넘는 금액에 분양을 다 마쳤고 '구경하는 집' 딱 한 세대가 남았다면서 대출 없이 현금으로 매매하면 취득세 지원 차원에서 10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더욱이 근린생활시설이라 나중에 주택청약에도 문제가 없다고 재차 부추겼다.

A씨의 마음은 사실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다. 빌라에서 전세로 살던 후배가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6개월 동안 발이 묶여 동동 구르던 모습 또 매매한 빌라의 집값이 떨어져 속상해하던 다른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에선 그래도 아파트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팍팍했다. 서울에선 구석진 외곽에 있는 소형 아파트도 전세가가 적어도 3억원이 필요했다. 평범한 월급쟁이 1인 가구주로선 어림도 없는 금액이다.

A씨는 며칠 동안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 집을 둘러봤지만 결국 현재 자금 사정으론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점찍어둔 빌라의 전세가가 1억 7000만 원이었는데 1억 8000만원에 집을 살 수 있다니. 그것도 아무도 살지 않은 새 집이라는 사실에 덜컥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어떻게 매매가 전세보다 쌀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제서야 다급하게 인터넷을 찾아보곤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바로 근린생활시설이 함정이었다.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이 아닌 상가다. 상가지만 주거용으로 신고가 가능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근린생활시설은 용도상 주택이 아니어서 해당 빌라 내 다른 주택 소유주들과는 달리 거주자 주차공간을 인정받지 못한다. A씨는 차가 없으니 이 부분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주거는 할 수는 있지만 주거용 시설로 개조한 만큼 엄연한 불법시설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구청에 적발될 경우 상가용 시설로 원상복구명령이 내려진다. 명령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전용면적 85m² 이하면 5회 이내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85m² 이상일 경우 1년에 2회 상가용 시설로 원상복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앞서 취득세를 지원해주겠다는 건축주 대리인의 제안도 입에 발린 소리였다. 일반적으로 주택 매매 시 취득세와 지방교육세를 합해 1.1%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근린생활시설은 농어촌특별세까지 더해 총 4.6%의 상가 취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매매 대금이 1억 9000만원일 경우 취득세를 계산해보면 전용면적 85m² 이하 주택은 209만원 수준인 반면 근린생활시설은 874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행강제금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도 더 비싸다. 서울에서 5000만원 이상 2억원 미만 주택을 매매할 경우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거래가액의 0.5% 이내에서 결정하되 한도액이 8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반면 근린생활시설은 이 기준이 0.9%로 올라간다. 1억 9000만원이면 중개수수료만 170만원을 웃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자금대출도 받을 수 없다. 현금 매매 시 10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말도 속임수였다.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용 빌라보다 전세나 매매 계약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씨는 대리인과 거친 언쟁이 오간 끝에 결국 계약을 해지하긴 했다. 하지만 해당 세대가 근린생활시설이라는 사실을 구두상으로 들었던 탓에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대리인은 요즘 신축빌라들은 대부분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하고 있어 실제로 구청이 문제 삼을 리는 없다면서 계속 계약을 요구했다. 계약금을 되찾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가 막심했다.

A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유 없이 싼 물건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서울의 높은 집값에 탓에 저렴한 빌라로 눈을 돌리는 1인 가구나 신혼부부들이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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