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공시가격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세종시가 70% 이상 급등하거나,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보다 강북이 더 오르는 등 이례적인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올해부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른 현실화율 개선(공시가 상승요인)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변동률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은 재산세율 인하가 적용되지만 시세에 따라 해마다 공시가격 인상 폭이 들쑥날쑥 할 경우 보유세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고가주택 현실화율 더 높은데, 중저가 더 오른 이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0.2%로 전년보다 1.2%포인트 개선됐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부합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정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2025~2030년까지 가격 구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현실화율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르면 시세 15억원 이상의 고가주택은 올해 78%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90%에 도달해 현실화율 개선 속도가 가장 빠르다. 시세 9억~15억원은 2027년, 9억원 미만 주택은 2030년 90%에 도달한다.
그 동안 중저가 주택의 현실화율이 고가주택보다 높았던 역전현상이 발생했던 만큼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빠르게 개선하고, 중저가주택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기울기로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다.
올해 가격 구간별 현실화율이 평균치와 마찬가지로 정부 계획에 부합했다면 시세 15억원 이상은 78.3%, 9억~15억원은 75.1%, 9억원 미만은 68.7%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토부는 최종 공시가격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의견 수렴 등을 거친 4월29일 이후 가격 구간 별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정확한 숫자 집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주목할 것은 올해부터 현실화율이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고가주택보다 속도 조절 대상인 중저가 주택의 공시가격 변동률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시세 15억원 이상 고가주택이 즐비한 강남3구(강남 19.36%‧서초 13.53%‧송파 19.22%)의 올해 공시가격 변동률은 평균 17.6%로 서울 평균(19.9%)을 밑도는 반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강북3구(노원 34.66%‧도봉 26.19%‧강북 22.37%)는 평균 27.74% 상승했다.
결국 올해 공시가격에는 현실화율보다 시세 변동률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지난해에는 가격 갭 메우기 현상으로 중저가 지역 집값이 많이 올랐던 게 공시가격에 반영되면서 변동률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시세 반영 중심으로 가다보니 현실화 계획이 시행되는 동안에도 공시가격이 들쑥날쑥 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재산세율 인하에도 시세 상승엔 속수무책
국토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올해 공시가격이 5억9200만원으로 전년보다 19.1% 오른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전용 84㎡)의 경우 재산세는 94만2000원으로 10.4% 감소했다.
정부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현실화 계획에 따른 보유세 부담을 덜기 위해 재산세율을 인하했지만 해마다 공시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면 중저가 주택 보유세 부담도 만만찮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집값 상승이 지속되면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 또한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재산세율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은 "3년간 한시적으로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은 재산세율 인하가 적용되기 때문에 현재 공시가격 4억원 대의 주택은 크게 부담이 늘진 않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4억원 후반에서 5억원 대의 주택은 공시가격 상승으로 6억원이 넘어선다면(재산세율 인하 대상 제외)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가격 구간에 따라 현실화율 개선 속도에 차이를 두면서 서민들의 보유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노력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규정 소장은 "공시가격이 시세 중심으로 책정되다보니 급격한 변동률을 만들면서 원치 않았던 역전 현상(중저가 주택 공시가격이 고가주택보다 더 크게 오르는)이 발생했다"며 "재산세율 인하가 있긴 하지만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이에 대한 시장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