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나울보 씨는 정부 말만 믿고 집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지난 연말 서울에서 9억원 넘는 집을 장만했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6억원대였던 집을 3억원을 더 주고 산 셈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최대한도까지 대출을 받았지만 턱 없이 모자라 지인한테까지 돈을 빌려야 했다. 내집마련의 기쁨도 잠시,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30% 가까이 올라 100만원 가량의 세금도 내야 할 판이다. 이러다 몇년후 종부세 대상이 될까 더 걱정이다.
정부가 사실상 정해 놓은 고가아파트(혹은 초고가) 기준선인 9억원과 15억원을 넘는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내집마련에 나서는 실수요자들은 높은 집값에 울고 높아진 대출문턱에 또 한번 울게 된다. 공시가격 현실화율도 가파르게 진행돼 세금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 '9억원은 돼야지' 집값 키맞추기?…대출문턱에 '턱'
분양가가 9억원을 넘으면 중도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2017년 8·2대책에서 집단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9억원 넘는 아파트에 대해 한국도시주택보증공사(HUG)의 보증을 제공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당시에만 해도 서울에서 9억원 넘는 아파트 비중은 2017년말 21.9%에 불과했고 2018년에도 31% 수준으로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만큼 고가아파트에 해당, 접근이 어려운 금액대로 여겨졌다. 이후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고 현재 서울에선 9억원 넘는 아파트가 절반 이상이다.
2019년 12·16대책에선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대출 LTV를 9억원까지는 40%, 초과분부터는 20%를 적용토록 했다. 초고가아파트인 15억원을 넘으면 대출이 아예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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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값은 ▲2017년 12월 6억8500만원이었는데 ▲2018년 12월 8억4501만원으로 12·16 대책 당시인 ▲2019년 12월 8억9751만원으로 9억원에 근접했다. 이후 ▲2020년 12월 9억4740만원 ▲올해 2월 현재 9억6479만원으로 10억원을 향해 가고 있다.
서울 상당수의 아파트들이 9억원을 넘는데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내집마련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분양아파트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연말 분양한 과천지식정보타운 3개 단지 가운데 과천푸르지오어울림라비엔오와 르센토데시앙 두개 단지는 전용 85㎡ 초과 물량이 각각 전체의 42%에 달하는데 저층(1, 2층)가구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도금대출이 불가한 9억원을 넘는다.
이미 강남권 청약단지에선 소형 평형조차 9억원을 넘어 중도금대출이 안된지 오래다.
게다가 9억원, 15억원이란 고가 및 초고가아파트 기준선을 제시하면서 갭메우기 현상 등으로 집값을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9억원, 15억원을 기준으로 대출규제를 하면서 결국 이 가격 밑에서 시세가 움직인다"면서 "가격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시세 9억 넘으면 공시가격 현실화율 가팔라…세금부담
최근 9억원 넘는 아파트에서 또한번 곡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해당 구간의 아파트 공시가격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거나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대상 아파트들이 늘어나면서다.
시세 기준 9억~15억 미만, 15억원 이상 주택은 올해부터 공시가격 현실화(시세반영)율을 3%포인트 끌어올려 각각 2027년과 2025년 90%로 높인다는게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이었다. 9억 미만 아파트보다 현실화율 속도가 빠르다. 이 로드맵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9억 미만 68.7%, 9억~15억원 72.2%, 15억원 이상 78.3%다.
현실화율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공시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이에 따른 세금부담이 커지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1주택자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을 넘으면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된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서울의 9억원 초과 주택은 전년도보다 46.9%나 증가했다. 전국 기준으로는 69% 늘어났다. 서울의 9억원 초과 주택 비중도 지난해 11%에서 올해 16%로 확대됐다.
특히 최근 현실화율을 고려하면 서울에서 시세 9억원 수준이 속한 공시가격 구간인 6억~9억원 이하 주택 비중이 지난해 9.7%에서 올해 13.4%로 역시 가파르게 늘고 있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머지 않아 종부세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은 "최근 3년처럼 시세가 급격히 상승하지 않는다해도 현실화율 개선때문에 해가 갈수록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종부세 구간에 진입하는 주택이 많아질 것"이라며 "지금처럼 집값이 올라간 상황에선 기준점(9억)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서울 아파트 절반이 9억원 넘는데 고가주택?…기준 손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