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요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자주 소환되는 해가 있습니다. 집값이 급격하게 하락했던 지난 2012년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은 침체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2012~2013년도쯤에 집값은 바닥을 찍게 됩니다. 당시 '하우스푸어'라는 용어가 유행했을 정도로 '부동산은 끝났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야말로 '대세 하락기'였던 셈입니다.
최근 2012년이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그때처럼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할 거라는 전망 때문입니다. 가장 앞장서서 '대세 하락기'가 올 거라고 자신하는 건 정부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속해 "집값 하향 안정세가 가속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질 거라고 강조하고 있죠. 향후 공급과잉이 우려될 정도로 주택 공급을 쏟아내 집값 안정세를 굳히겠다는 의지입니다.
실제 최근 여러 부동산 시장 통계를 보면 지난 2010년대 초반 대세 하락기가 떠오르는 게 사실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래절벽' 현상이 대표적인데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지난 1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간 주택 매매거래량은 총 5만 3774건으로 지난 2008년 4만 건 이후 13년 만에 최저 수준입니다. 서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량은 4만 9800건가량으로 지난 2012년 약 4만 4800건을 기록한 이래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10년 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점, 정부가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했다는 점 등도 지금과 비슷해 보입니다. 수년간 집값이 크게 올라 사람들의 피로도가 커졌다는 점도 유사하고요.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전국적으로 집값 상승세가 줄줄이 마감되기도 했죠. ▶관련기사: 참여정부땐 '금리인상' 집값 못잡았는데…이번엔 잡힐까(2021년 12월 6일)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 정부의 예견처럼 대세 하락기가 오는 걸까요. 2012년의 그때처럼 집값이 급락하게 될까요.▶관련기사: 길었던 집값 상승장 끝?…'1·2위' 인천·경기도 꺾였다(2월 5일)
전문가들은 2012년은 집값이 크게 하락한 '상징적인 해'이긴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당시는 이미 수년간 하락기가 진행된 이후이기도 했고요. 특히 이듬해인 2013년에 집값이 바닥을 찍은 뒤 다시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대세 하락기가 시작됐다고 여겨지는 2008년 정도가 적합하다는 지적입니다.
2008년과 지금은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랜 기간 집값이 올라 사람들의 피로감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건 2000년에 들어서면서입니다. 이후 2006~2007년까지 상승세가 이어졌고요. 최근에도 2014년쯤 반등한 집값이 지난해까지 7년 간 천정부지로 치솟았죠.
집값 고공행진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이제 집값이 떨어질 때가 됐다고 전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2008년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큰 사건이 있었죠. 우리나라 역시 전 세계적인 불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요. 금융위기는 2010년대 초반 유럽의 재정위기로 확산하며 장기간 세계경기의 침체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주춤하긴 했지만 '경제위기'라고 표현할 수준의 타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역시 4%로 준수한 수준을 기록했고요.
여기에 더해 여전히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서울에서의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26만1386가구로 지난해(21만4381가구)보다 21.9%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서울의 경우 입주 물량이 1만8148가구로 지난해보다 되레 1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의 집값이 지난 2010년대 초반처럼 하락세에 접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소장은 "지난 2008년과 지금은 수년간의 상승세로 집값이 고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경제 위기를 맞은 게 아닌 데다 앞으로 1~2년 정도는 여전히 입주 물량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당시의 흐름이 재현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고 소장은 3기 신도시 등에 실제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는 2~3년 뒤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보금자리 주택 공급이 본격화하면서 집값 하락세가 더욱 뚜렷해졌다"며 "물량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확인되던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의 거래절벽이 지난 2010년대 초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해 정부가 '반값 아파트', 즉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본격화하면서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반면 최근의 거래절벽은 정부의 과한 규제로 인한 현상이라는 분석입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경제 위기가 온 것도 아닌데 그 수준으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면서 "정부가 대출 규제 등으로 시장을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비정상적인 시장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신호'들이 2010년대 초 당시의 대세 하락기를 가리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 우리나라 집값은 어떤 흐름을 보일까요. 정부가 자신한 것처럼 추세 하락이 시작된 걸까요. 아니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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