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떠오른 리모델링 사업에 때아닌 역풍이 불고 있다. 리모델링 활성화를 내세웠던 지자체조차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을 이유로 조합 설립을 거부하면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재건축 규제완화' 또한 리모델링 사업추진에 힘을 빼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재건축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이하 재초환) 등 재건축 발목을 잡는 정책이 여전한 이상 득실을 따지는 게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리모델링 조합' 설립부터 쉽지 않네
21일 각 조합에 따르면 경기 고양시는 강선14단지두산과 문촌16단지뉴삼익의 리모델링 조합 인가를 보류했다. 해당 지역의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을 초과했다는 이유에서다.
강선14단지두산과 문촌16단지뉴삼익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단지들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지난달 리모델링조합 설립 총회를 열며 일산신도시 중 처음으로 리모델링 사업을 가시화했다. ▷관련기사: 출발선에 선 일산 리모델링…신호탄은 '용적률 완화'(2월7일)
하지만 고양시는 이들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는 "해당 지역은 고양시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이 185% 이하이므로 리모델링 추진위에서 제출한 용적률 약 250%의 사업계획에 대해 관련 법규상 하자 여부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인가신청 민원을 취하할 것을 권장했다.
추진위들은 즉각 반발했다. 리모델링 추진 시 기존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이 아닌, 제3종 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선인 250%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게 추진위측 설명이다. 앞서 일부 지자체는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지구단위계획 이상의 용적률을 인정한 바 있다. 경기 부천시는 작년 11월 중동·상동지구의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하고, 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을 초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지역의 민원이 빗발치자 고양시는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달 내 조합설립인가에 대한 최종 의견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앞서 1기 신도시가 위치한 경기 고양·성남·부천·안양·군포시는 '1기 신도시 활성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수직증축 등에 필요한 리모델링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였다.
김유정 강선14단지 리모델링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은 "일산신도시 아파트 단지 268곳은 모두 지구단위계획을 적용받고 있다"며 "이같은 용적률 제한이 적용되면 리모델링 물론이고 재건축 또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4월1일께 고양시 1호 리모델링 조합으로 강선14단지와 문촌16단지의 조합설립인가가 동시 발표될 것이라는 시의 의견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재건축→리모델링→재건축…규제 따라 이동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도 리모델링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분양가상한제 △안전진단 △초과이익환수제 등의 '3대 대못'을 뽑겠다고 약속하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관련 기사: [윤석열 시대]재건축 시대 온다…'3대 대못' 뽑을까(3월10일)
리모델링은 그간 재건축에 비해 빠른 사업추진이 장점으로 꼽혔지만, 규제 완화가 예상되는 재건축을 놔두고 '사업성'이 덜한 리모델링을 택할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리모델링은 신규 주택공급 효과도 미미하다. 기존 가구 수의 최대 15%까지 늘릴 수 있는 탓에 일반분양을 통한 사업성 확보가 어렵다. 정부 입장에선 임대주택 확보 등의 공익 효과를 누릴 수도 없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재건축 규제 완화 및 노후 신도시의 재생 활성화를 공약으로 선정함에 따라 기존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 재건축 사업을 다시 검토하게 됐다"며 "경제성과 공익성 측면에서 재건축사업이 리모델링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과이익 환수제'가 유지될 경우 지역별로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적절히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건축 부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단지의 경우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법 개정 사항으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이들이 개정에 일부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폐지 수준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초과이익환수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본래 재건축을 바라보던 단지들도 부담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많은 단지가 재건축을 고려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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