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나요. 7~8월은 아예 일이 없었거든요."
지난 18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아파트 인근 A중개업소 대표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8·16 공급대책을 통해 재건축 규제 완화를 발표하면서 노원의 주택값 하락세가 멈출 것이란 기대도 나왔지만 현실은 냉랭했다.
한창 부동산 시장이 상승기였을 땐 북적이는 시간이었다는 평일 오후 2시, 대다수의 부동산 중개업소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중개업소 직원들은 실내 등을 끄고 의자를 젖힌 채 잠을 자거나 건물 밖으로 나와 상점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근 상계동 B중개업소 대표는 "매수 문의가 일절 끊겼다"며 "간혹 시세 문의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래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2030 영끌성지였는데…"안 팔려요"
이날 들른 노원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들은 하나같이 "요즘 손님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집값 상승률 1위'를 기록하며 매수세가 뜨거웠던 작년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노원구는 지난해 재건축 기대감과 2030세대의 영끌 매수세로 서울 자치구 중 아파트값 상승률 1위(23.5%)를 기록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올 들어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에 따르면 지난 1월 둘째주 처음으로 노원이 마이너스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후 하락세를 지속했고 8월 셋째주엔 0.21%나 하락했다. 서울(0.09% 하락) 자치구 중 가장 크게 하락했다.
시장에서 기대했던 재건축 규제 완화도 약발이 들지 않는 듯 했다. 8·16대책(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서 재건축 규제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제시됐다. 노원구의 집값 흐름을 바꿔놓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상계동 C중개업소 대표는 "(재건축과 관련해서) 대선 등에서 이미 다 나온 말들을 그대로 반복하기만 했지 구체적인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며 "발표 후 가격이나 거래 등의 변화도 없다"고 말했다.
상계동 D중개업소 대표도 "대책 발표 후 매수 문의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매물은 쌓이고 있지만 매수자들의 문의는 끊긴 지 오래라는 설명이다.
반년만에 7000만원 '뚝'…규제완화보다 '금리' 촉각
시장에선 재건축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보다 금리가 시세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D중개업소 대표는 "금리인상기에 높은 대출금리를 감당하면서까지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매수 심리가 꺾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세 차례(4,5,7월·총 1%포인트)나 인상하면서 매수 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한국 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3.7로 둘째 주(84.4) 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는 2019년 7월 둘째 주(83.2)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다.
매매수급지수(기준점 100)는 기준점보다 높을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고, 기준점보다 낮을수록 집을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동북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77.2로 서울 5개 권역 중에서 가장 낮았다. 동북권에는 최근 20·30세대의 '영끌'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노원·도봉·강북이 포함된다.
도봉구와 강북구 주택 시장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봉구 창동 F중개업소 대표는 "매수 문의는 초급매만 찾는 사람들 뿐"이라며 "그 가격에는 팔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매물도 같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구 번동 G중개업소 대표도 "가격 물어보는 사람들은 가끔 있지만 실제로 매수 의사를 가지고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며 일주일에 단 한 건의 매수 문의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늘어나는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초급매'로 집을 내놓는 집주인도 등장했다. 상계동 E중개업소 대표는 "상계주공7단지 전용면적 60㎡가 현재 6억5000만원에 나왔다"며 "올해 초 호가가 7억2000만원이었는데 집주인이 초급매 수준으로 가격을 내렸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지역은 주택담보대출(LTV)을 40%까지 받을 수 있는 9억원 이하의 아파트가 많다"며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금리상승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같은 분위기에도 높은 호가를 유지한 매물도 눈에 띄었다. 재건축 규제 완화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집주인들이 호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계주공6단지 전용면적 57㎡은 현재 6억8000만원에 호가하고 있다. 이는 한창 부동산 상승기였던 지난해 4월 거래 가격(국토교통부 집계·6억6000만원)보다도 2000만원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