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때이른 한파가 찾아왔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서울도 미분양이 쌓이고 일부 지역은 '반값' 수준으로 호가가 내리는 등 잔뜩 얼어붙었다.
주택 매수 심리를 꺾은 금리 인상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레고랜드'발 자금경색까지 더해지자 수요도 공급도 막히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장이 뒤집히자 '속도 조절'을 외치던 정부도 정책을 뒤집고 본격적인 규제 완화에 나섰다.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선 대출, 세제 등에서 더 큰 폭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시장의 제언이 나온다.
부동산 경착륙할라…본격 규제완화 'U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굵직한 규제 완화 방안을 예고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관련기사:1주택자·무주택자 LTV 50%로 상향…규제지역 추가 해제(10월27일)
그중에서도 '규제지역 추가 해제 검토'는 앞서 해제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눈길을 끌었다. 국토부는 통상 상·하반기에 한 번씩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열고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지정 및 해제 여부를 발표한다.
올해 5월16일 원희룡 장관 취임 후 6월30일, 9월21일 두 차례 주정심을 열었으나 지방 위주로 규제지역을 해제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그러나 남은 규제지역은 서울 등 수도권과 세종 뿐이라 이들 지역이 풀릴 경우 일부 거래 활성화에 영향을 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한창 집값 상승기 때 도입했던 규제도 푼다. 2019년 12·16대책의 핵심 규제였던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3년여 만에 완화하고, 2020년 6·17대책에 담겼던 청약당첨자 기존주택 처분기한도 2년여 만에 연장(6개월→2년)한다.
이와 함께 2016년 8월부터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에만 적용됐던 중도금 대출보증은 5년여 만에 12억원 이하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기조가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원희룡 장관은 취임 이후 줄곧 '속도 조절론'을 펴왔다. 이제 조정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 규제를 잘못 풀었다간 다신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첫 부동산 대책이었던 6·21대책(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은 분양가 상한제 개편이 골자였으나 이로 인한 정비사업장 분양가는 1.5~4.0% 인상에 그칠 것으로 추산돼 주택 사업자들의 불만을 샀다.
향후 5년간의 공급 계획(총 270만 가구)이 담긴 8·16대책도 신규정비구역 지정 확대, 재건축초과이익 감면, 안전진단 제도 개선 등을 예고했을뿐 시장이 원하는 구체적인 규제완화책이 포함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기조는 9월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주정심 개최 3개월만인 9월에 또다시 주정심을 개최해 지방 전체 규제지역을 해제했고, 같은 달 29일엔 재건축 부담금 면제 기준 상향 등을 골자로 한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연내 예고한 '안전진단 규제 완화'까지 발표되면 분양가상한제, 재건축 부담금 완화에 이어 '재건축 3대 대못'이 뽑히는 셈이다.
수요도 공급도 꺾일 판…"규제 더 완화돼야"
국토부가 전과는 달리 '규제 완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시장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주택 매수 심리가 크게 꺾인 가운데 부동산 PF 등 자금 경색이 맞물리며 공급 시장까지 얼어붙은 탓이다. 부동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금리 인상으로 '광풍' 수준이었던 수도권 청약 시장에서도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 의왕시 '인덕원자이SK뷰'는 지난달 1순위 청약에서 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절반 이상이 계약을 포기하며 508가구나 줍줍(무순위 청약)으로 나왔지만 단 6명이 청약해 아직도 502가구가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604가구로 '4만 가구' 선을 넘어섰다.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9월만 해도 1만3842건이었으나 올해 1월(2만1727건) 2만 가구를 넘었고, 7월(3만1284건) 3만 가구를 넘은 지 두 달 만에 4만 가구 선을 무너뜨렸다.
특히 지방보다 수도권에서 미분양이 큰 폭 증가했다. 지방은 같은 기간 2만7710가구에서 3만3791가구로 21.9%(6081가구) 증가한 반면 수도권은 5012가구에서 7813가구로 55.9%(2801가구) 늘었다.
서울도 719가구로 한때 잘 나가던 마포가 245가구로 가장 많았다. 강북 183가구, 구로 69가구, 도봉 60가구, 동대문 50가구, 용산 41가구 등이 뒤를 이었다.
가격도 내리막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수도권 아파트값은 2.37% 하락해 동기 기준으로는 2012년(-4.13%) 이후 10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여기에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주택 사업자들의 자금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적극적인 주택 공급이 어려워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관련기사:[인사이드 스토리]레고랜드가 쏘아 올린 부동산 보릿고개?(10월23일)
시장에선 정부가 더 큰 폭으로 규제를 완화해야만 부동산 경착륙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금리 인상 속도보다 빠를 정도로 급격히 위축되는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PF 시장이 초토화됐다"며 "수요는 과도하게 위축되고 공급은 자금경색에 막히면서 그야말로 위기가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집값 하락폭이 커지면서 매매시장은 물론이고 전세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고, 나아가선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며 "수도권 규제지역 해제뿐만 아니라 미분양관리대상지역을 확대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부동산 PF 괜찮나]②문제없다는 저축은행…커지는 걱정(11월3일)
이어 "규제를 완화해주면 실수요자들은 오히려 집값이 떨어진 시점이라 매수할 수도 있다"며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금융, 국내 경기 전반까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감안해서 정부의 선제적인 규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도 "부동산 매수세는 앞으로 가격이 오른다는 기대감이 있을 때 붙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웬만한 규제 완화로는 거래 정상화가 어려워 보인다"며 "대출, 세금 규제 등을 큰 폭으로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