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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엄마, 비정상거처가 뭐예요?

  • 2023.03.30(목) 15:01

국토부, '비정상거처' 대상 주거복지 추진
반지하·고시원도 건물 나름인데 '낙인'
소셜믹스 고민시점에 무책임한 용어사용

지난해 홍수 사태에 이어 전세 사기 등이 잇달아 발생하자 '비정상거처' 정책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정책이기도 하고요. 

가뜩이나 비주택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마당에 박수쳐줄만한 정책인듯 싶은데요.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도 법률상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거처'라는 용어인데요.

용어가 참 불편합니다. 비정상거처라고 하면 마치 정상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듯한 느낌이거든요. 판잣집처럼 허름하거나 혹은 합법적으로 취득하지 않고 사는 거처인 것처럼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물론 따져보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정부가 비정상거처라고 규정한 주택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국토부훈령) 제3조에 근거하는데요.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움막, PC방, 만화방, 재해우려 지하층 등이 속합니다. 공용 시설인 PC방이나 만화방을 '집'이라고 여기고 산다면 당연히 문제고요.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쪽방 등은 화재 등에 취약해 안전이 우려됩니다.

특히 이 건물들은 면적이나 환경 등에서 주택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주거의 질이 상당히 낮은 편이죠. 정부에서 거주자들게 '주거 이전'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정부가 '비정상거처'를 규정하고 주거 지원을 시작한 건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입니다.  윤 정부는 110대 국정 과제에 공약 내용이었던 '쪽방 등 비정상거처 가구에 대한 이주지원 강화'를 포함했고요. 이후 국토교통부가 8월16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내놨습니다. 

국토부는 그해 여름 서울 등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반지하 거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 등을 고려, 해당 방안에 재해 우려가 있는 비정상거처 거주자를 중심으로 이주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비정상거처 거주자에 대한 공공임대 우선공급 물량도 늘리기로 했고요. 

그리고 어제(29일) 그 후속 조치로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을 실행하기로 하고 4월10일부터 접수하기로 했죠.

비정상거처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 중 소득 5000만원, 자산 3억61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세대주를 대상으로 최대 5000만원을 무이자로 최장 10년까지 대출해주는 건데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제3조(입주대상자)./그래픽=비즈워치

국토부는 기존에 월세 30만원(자기 부담)을 내던 거주자라면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만원(자기 부담)짜리 '주택'으로 상향할 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국토부가 비정상거처라고 보는 대상엔 '최저주거기준을 미달하는 환경에서 만 18세 미만의 아동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사람'도 포함되는데요. 

최저주거기준은 3인 가구(부부+6세 이상 자녀1)의 경우 방 2개, 총주거면적 36㎡입니다. 현재 서울 강서구 화곡동 A주택(다가구) 공급·전용면적 8㎡짜리 옥탑방이 전세보증금 5000만원에 나와 있고요. 같은 지역 B주택(빌라·투룸) 공급면적 38㎡·전용면적 29㎡는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월세 50만원에 호가하고 있습니다.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집값이 워낙 높아 국토부에서 얘기하는 '주택'에 거주하려면 5000만원 대출만으로는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무엇보다 '낙인' 효과가 문제입니다. 비정상거처로 분류하는 자체가 거주자들에겐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거든요. 건물·타입 등에 따라서는 주거 기능이 충분한 반지하나 고시원도 꽤 있고요.

동일한 아파트에 살아도 '임대냐 분양이냐'로 골라 내서 차별을 하는 마당에 비정상거처에 산다면 또다른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 등의 혐오성 단어가 생기진 않을까 우려되네요.  

소셜믹스를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정책을 펴야 할 정부가 앞장서 '비정상거처'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셈입니다.

용어가 생긴 배경에 대해 물어봤는데요. 국토부 관계자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현 대통령 공약집과 정부 국정과제에서 비정상거처라는 용어를 써서 통일한 것"이라고요. 

그러면서 "주택이 아닌 곳에 주택처럼 살고 있는 분들이 대상인데 그 중 반지하 등 지하층은 주택건축물 대장상 주택이기 때문에 비주택으로 포괄하기도 애매하다"고도 덧붙였고요.

결국 대통령이 바꿔 불러야 된다는 건데요. 실제로 정책을 실행하는 주무부처에서 용어 하나 주도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는 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당장 비정상거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거주자들이 입을 떼기 전 망설일 수도 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비정상거처 거주 확인서'를 떼고 은행에서 '비정상거처 이주지원 버팀목전세자금대출'을 요청할 때 말이죠.

함께 데려간 자녀가 이렇게 물어오면 어떡하죠. "엄마, 비정상거처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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