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서 반복되는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정 공사비와 공사 기간 확보가 핵심이라는 주장이 건설업계에서 제기됐다. 처벌 중심의 규제 강화는 사후적인 대처여서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사고 많고 수익은 찔끔'…토목 꺼리는 건설사들(6월4일), 오르는 집값에 가려진 건설업 '침체'(7월18일)
정부가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는 공공공사에 한정돼 있다. 전체 건설시장의 78%를 차지하는 민간공사 현장은 여전히 사각지대란 의미다. 건설업계 내에서는 예정가격 가운데 순공사비 98% 미만 낙찰배제 대상을 확대하고, 총사업비 산정체계를 고도화하는 등 공공과 민간공사 모두에 적용 가능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적자공사만 43.7%, 돌관공사도 22%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11일 건설업계 주요 현안 및 추진계획을 내용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협회 현안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 시 강력한 처벌을 부과하는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하 중처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감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 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망(CSI) 신고기준 사망자 수는 2021년 251명에서 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 238명을 기록했다. 소폭 줄어든 듯 보이지만 2023년 244명으로 다시 늘었고 2024년엔 207명으로 여전히 200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현장여건이나 공사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공사비와 촉박한 공사 기간 내 완공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공자가 무리한 돌관공사(장비·자재를 집중 투입해 밤낮없이 강행하는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이로 인해 부실공사,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한편 경영환경 악화, 신뢰 저하에 따른 산업발전 저해 등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나서 공사비 현실화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계약제도를 중심으로 개선이 이뤄지고 있어 적정 공사비와 공기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소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실제 협회가 150개 시공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준공공사 가운데 적자공사 비중이 43.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시공의 주된 이유로는 입찰단계의 공사비 과소책정과 시공단계에서의 계약금액 미조정 등으로 나타났다.
2020년 이후 국제 공급망 불안과 국내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2020년 1월 99.9였던 건설공사비지수는 올해 9월 131.7로 30% 넘게 치솟았다. 그러나 발주기관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품셈 단가를 자의적으로 삭감하거나 과거 단가를 그대로 적용하는 관행이 지속되며 현장에서는 설계 단계부터 이미 '부족한 예산'이 구조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시간과 돈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품질 저하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협회가 123개 시공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1%가 공사 기간이 적정하게 산정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공사 기간 부족으로 지체상금을 부담하거나 돌관공사를 수행한 공사도 전체 공사의 22%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공사 기간을 정하거나 관급자재 수급 지연이 발생해도 공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는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건설시장의 78%를 차지하는 민간공사의 경우 물가 변동이나 설계변경 시 계약금액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자재비 급등기마다 분쟁과 공사 중단이 속출했다. 협회가 적정 공사비와 공사 기간 마련을 위한 제도개선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 같은 이유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건설업계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중처법뿐 아니라 건설안전특별법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협회는 "사고 예방의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우선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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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공기 산정 과정 전반 개선"
이에 대한건설협회는 공사비·공기 산정 과정 전반을 개선하는 종합 제도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한승구 대한건설협회장은 "건설현장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적정 공기와 공사비 확보방안을 연구하며 정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면서 "사고 원인을 자세히 분석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건설안전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발주자의 적정 공사비·공기 산정 의무화 △산정 과정의 검증 체계 구축 △예측 불가능한 물가 상승·설계변경에 대한 합리적 조정 절차 도입 △민간공사 계약금액 조정제도 정비 등을 골자로 지속적인 건의를 추진 중이다.
또한 장기계약공사의 총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비용 보존, 순공사비 98% 미만 낙찰배제 적용 대상을 100억원 미만에서 3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등 예정가격 산정 고도화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부당한 예정가격 산정 시 이의신청 허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아울러 단가산출 자료 교부 의무화, 최신 단가 적용을 의무화하는 한편, 총사업비 산정체계 고도화를 통한 공사비 현실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협회는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앞으로도 정부·국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건설 경기 회복. 미분양 문제, 건설산업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한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한 회장은 "협회는 인프라 확충을 위한 건설투자 확대, 미분양 해소 등 국가 경제 활력 제고 방안을 지속 건의하며, 건설산업이 우리 경제의 재도약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