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남 말하듯 말할 수는 없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문제를 지적받자 이렇게 응수했다. 낙하산 인사가 역대 정부에서 지속해 발생해 온 만큼 야당 역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언급으로 풀이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국토부 퇴직 공무원들의 전관예우 논란과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문제가 주목받았다. 국토부는 그간 건설 업계에 만연한 카르텔을 척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정작 국토부 역시 이런 카르텔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토부 및 산하기관의 퇴직 공무원이 취업 심사 없이 건설사 등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적발된 사례가 4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직급 이상의 퇴직공직자는 재취업할 경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시설 6급 공무원은 지난 2017년 퇴직한 지 한 달 만에 한 엔지니어링 업체 부사장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4급 공무원의 경우 지난 2020년 퇴직하고 이듬해 대형건설사의 전문위원으로 취업했다.
국토부는 산하 공공기관 낙하산 논란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번 정권 들어 국토부 산하 기관에는 139명의 임원(당연직·노동이사 제외)이 임용됐는데 이중 대선 보은 인사가 55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등 전관 인사도 21명에 달했다.
특히 원 장관의 측근 인사가 임원으로 임명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제주도지사 출마 당시 캠프 대변인과 제주도지사 정무특별보좌관, 국민의힘 제주도당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 등이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의원은 "LH 부실시공, 양평고속도로 게이트 등 많은 사건들에서 전관이 공공과 민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며 문제를 발생시켰다"며 "윤석열 정부도 '퇴직자 재취업을 통한 카르텔 형성'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심화시켜 왔다"고 꼬집었다.
원 장관은 그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예우 문제 등 건설업계 카르텔에 대해 때마다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지난 8월에도 자신의 SNS에 "과거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후진국형 관행과 이권 카르텔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았다"며 "국토부와 관련된 모든 전관 이권 카르텔을 철저히 끊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다시 잇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토부 역시 전관예우나 낙하산 인사 등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원 장관이 그간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아전인수 격의 시각도 문제다. 그는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에 대해 "정도껏 해야 한다"며 "황당할 정도로 (전문성이 없는)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국감에서도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야당을 향해 "사돈 남말 하듯 말할 수는 없다"며 "정도껏 할 수 있도록 살펴보겠다"고 언급하는 등 그간의 입장을 유지했다. 정치권에서는 어느 정도 용인된 관행 아니냐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건설 업계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LH나 건설사에는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국토부와 자신에게는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나 LH에 대해서는 뿌리 뽑겠다, 척결하겠다는 등의 단어를 써가며 때리더니 정작 국토부나 정치권의 잘못된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어물쩡 넘기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전관을 무작정 차단하겠다는 언급보다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이런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토부 먼저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