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을 옆에 끼고 서울 중구 약수에서 한남동으로 넘어오는 6호선 버티고개역 앞엔 도심임에도 '숲세권'인 대단지가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아파트다. 올해 입주 22년차인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 지도 6년 가까이 됐다. 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구청에 조합설립을 신청했지만 인가를 받지 못했다.
중구는 서울시가 소유한 임대주택을 제외하고 조합원이 가진 분양주택만 리모델링하는 게 가능한지를 검토 중이다. 남산타운 주민들은 시와 구가 안내한 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조속한 인가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임대주택을 포함한 대단지 리모델링의 첫 사례다 보니 두드려야 할 변수가 적잖은 게 문제다.
남산 낀 '도심·숲세권' 아파트
남산타운아파트는 분양주택 35개 동(3116가구)과 임대주택 7개 동(2034가구), 상가 5개 동으로 이뤄진 대단지다. 2002년 사용승인을 받아 올해로 22년 차다. 용적률 231%로 재건축은 어려운 만큼 분양주택의 가구 수를 467가구 늘리는 리모델링을 통해 3583가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1조2757억원 수준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8년 6월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단지'로 선정됐다. 서울시가 요구하는 친환경, 단지 개방 등 정책 사항을 이행하면 용적률을 최대 40%까지 올려주는 사업이다. 중구는 시비 보조금 3억5000만원을 받아 시범단지 기본설계와 타당성 검토 용역을 시행했다. 이듬해엔 남산타운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중구는 서울시의 발주요청에 따라 임대 동을 제외한 분양주택 35개 동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내용을 골자로 기본설계를 완료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통합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조합창립총회를 거쳐 같은 해 11월 중구청에 조합설립 인가를 신청했다. 유효 동의율은 66.98% 수준이다.
추진위에 따르면 현재 포스코이앤씨,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이 단지 리모델링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여왔다. 리모델링 기대감에 집값도 반응했다. 사업 추진 전 7억~8억원선에 거래되던 전용 84㎡는 시범단지로 선정된 2018년 11억5000만원에 거래됐고 2022년엔 15억9000만원까지 올랐다. 현재는 12억9000만~13억90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주택단지 전체? 동별 리모델링?
그런데 인허가권자인 중구가 '주택법' 제11조 제3항 해석을 두고 고심에 빠지면서 사업이 멈춰 섰다. 하나의 필지로 묶인 단지에서 임대 동을 빼고 분양 동만 리모델링할 때 '주택단지 전체를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경우'와 '동을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경우' 중 어떤 조항을 적용해야 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중구는 분양 동만으로도 주택단지라고 볼 수 있는지, 분양 동만을 대상으로 사업계획 수립 및 결의서를 징구한 경우 '주택단지 전체'를 적용할 수 있는지 질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단지 현황, 리모델링 조합설립 인가 신청 내용을 고려해 조합설립 인가권자인 구에서 적절히 판단해 처리하라"고 회신했다.
중구는 임대 동 소유자인 서울시가 분양 동 리모델링 조합설립에 동의하는지 재차 의견을 물었다. 중구는 지난 1월 공문에서 "입주자들은 기존 행정청의 기본설계에 근거해 임대주택은 제외하면서 분양주택은 리모델링하는 주택 단지형 조합설립 인가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회신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은 별도 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분양주택 리모델링) 사업 시행 시 주요 설비 및 주민공동시설에 대해 임대주택 입주민의 이용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고, 주거권 침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달라"는 단서만 달았다.
중구는 법령해석을 목적으로 서울시 감사담당관에 사전컨설팅을 신청하기도 했다. 중구는 "주택법상 동별 리모델링 기준을 준용해 인가신청을 반려할 경우 행정의 일관성 위배와 행정 신뢰도 저하가 우려된다"며 "사전컨설팅 감사 결과에 따라 인가 여부를 결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서울시 감사담당관은 "주택법에 대한 법령해석, 법률 자문 등을 통해 중구가 자체 판단해 인가 승인 여부를 결정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컨설팅 제외 사유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승인 책임을 구에 넘긴 셈이다.
임대주택은 서울시가 정비한다지만…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은 중구가 조합설립인가를 조속히 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남산타운 리모델링 통합추진위원회 관계자는 "2019년에 서울시와 중구가 검토해 주민들에게 제안한 사업계획"이라며 "이제 와서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면 인허가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냐"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동별 리모델링을 하게 되면 단지 통일성이 떨어진다"며 "설령 한다 해도 사업계획을 새로 짜고, 동별로 동의서를 다시 받고 동의율을 각각 충족해야 해 몇 년은 더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위는 시와 구가 제안한 기존 계획대로 임대 동을 존치하되 공공보행통로 등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중구 도심정비과 관계자는 "하나의 필지를 소유한 이상 '가구 수 증가 리모델링' 시 권리변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서울시 입장을 명확히 받을 필요가 있었다"며 "사전컨설팅과 외부 법률 자문을 진행하면서 시간이 다소 소요됐다. 추진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분양주택 리모델링은 인허가권자인 중구가 판단할 일이라며,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주거환경 개선을 실시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재정비가 필요한 임대주택은 별동으로 구성된 곳이 대부분인데, 이주와 비용 문제로 분양 동과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남산타운아파트는 품질개선 사업 대상이나 구체적인 시기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분양+임대' 노후단지 정비사업 '가늠자'
서울시는 지난 2022년 노후 임대주택 재정비를 골자로 한 '임대주택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2026년까지 준공 30년이 도래하는 임대주택은 24개 단지, 3만3083가구로 집계됐다. 15~30년 사이 노후주택 7만5000가구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재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처럼 임대주택을 포함한 아파트가 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에 본격 돌입하게 되면 남산타운아파트와 같은 갈등이 재현될 소지가 있다. 현재 리모델링 연한이 도래한 단지들은 임대 동과 분양 동이 분리된 '동별 분리형' 구조지만 최근 단지들은 임대와 민간 가구가 '완전혼합' 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완전한 소셜믹스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곳이 많아 리모델링 논의가 아직 없다"며 "그 시기가 도래하면 어떻게 할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분양단지만 리모델링하게 되면 전체 단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못하고 임대주택 단지는 악화하는 문제가 있다"며 "임대주택에 대해서도 같이 리모델링이 추진되도록 유도할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