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등 임대차 3법은 주택임대차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그런데도 이보다 강력한 '무제한' 계약갱신청구권이 입법 추진됐다. 결과적으로 최종 무산됐지만 주택 전·월세 시장에 파란이 일 뻔했다.
야당 주도의 이 법안은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계약갱신청구권 1회 제한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법안엔 임차보증금을 주택가격의 70% 이하로 통제하는 내용도 담겼었다.
'무제한 계약갱신권' 입법 좌초
1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발의 단계에 있던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지난 9일 철회됐다. 이 법안은 진보당 원내대표인 윤종오 의원이 지난달 25일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6명, 진보당 2명, 조국혁신당 1명의 의원도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중 5명이 요구해 법안은 철회됐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계약갱신청구권 횟수 제한 삭제 △월세 연체 2→3회 시 갱신 요구 거절 △임차보증금 등을 주택 가격의 70% 이하로 제한 △지역별 적정임대료 산정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임대차 계약 체결 즉시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 등이다.
윤종오 의원은 "전체 가구의 40%에 달하는 임차 가구가 임대인의 일방적 임대료 인상이나 퇴거 요구에 대한 부담 등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전세사기 방지와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담았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계약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비중은 30.2%로 나타났다. 현재 임차인은 계약종료 1~6개월 전에 계약갱신을 청구해 2년을 연장할 수 있다. 이때 임대인과 임차인 간 합의에 따라 보증금을 5%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다. 양측이 계약종료 통지를 하지 않아 자동으로 연장된 묵시적 갱신은 횟수 제한이 없다.
개정안은 1회로 한정된 계약갱신청구권 규정을 삭제해 갱신 요구를 '무제한' 할 수 있도록 했다. 갱신 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 없게 됐다. 갱신 거절 사유는 임대인 또는 그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하려는 경우, 임차인이 월세를 2회 연체한 경우 등이다. 개정안은 월세 연체 기준도 2회에서 3회로 완화했다.
'무제한 계약갱신권'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국회에 따르면 입법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 6일까지 2만6541건의 의견이 제출됐다. 대부분 반대 의견으로 파악됐다. 윤종오 의원의 블로그에도 '개인 재산권 침해다', '전세를 없애자는 법이냐' 등 반대 댓글이 다수 달렸다.
전문가들은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월세로 전환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대부분의 임대인은 월세로 전환하거나 매각 후 '똘똘한 지역'에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라며 "전세 공급이 급감하면서 전월세 가격은 급등하고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심화해 지방소멸이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값의 70%까지만…"무슨 근거로?"
가격통제 정책에 대한 부작용도 제기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차보증금과 선순위 담보권, 국세·지방세의 체납액을 더한 금액이 주택가격의 7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5억원을 빌렸다면 전세보증금은 2억원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시·도에 주택임대료 산정위원회를 두고 1년 주기마다 지역별 적정임대료를 산정·고시토록 했다. 보증금과 관련한 분쟁이 생기면 이 적정임대료를 분쟁조정의 기준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김인만 소장은 "깡통전세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건 이해하지만 이미 전세가율 70%가 넘는 집의 경우 본의 아니게 역전세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특히 비아파트는 공시가격과 시세 간 괴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주택가격의 70%로 제한하는 건 시장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적정임대료 산정 역시 사실상 국가가 임대료를 통제하겠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개정안이 야기한 임대차 시장 혼란에 부동산 중개업계도 팔을 걷어붙였다. 제14대 회장 선거를 앞둔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6일 임명천 회장 직무대행과 김영범, 김종호, 이종혁 등 입후보자 3명이 윤종오 의원실을 찾아 법안 철회요청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임명천 회장 직무대행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개업공인중개사의 생존권이 달린 중대한 사안이니 조속히 철회해 주기 바란다"며 윤 의원에게 직접 철회요청서를 건넸다. 윤 의원은 "협회 및 중개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잘 들었다"며 "다시 한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법안인 만큼 소관위원회 선에서 반려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철회돼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