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에게 연봉은 고된 땀방울에 대한 보상이자 자존심이고, 생계의 원천입니다.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유명 선수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인이 누리기 힘든 재산을 축적해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고액 연봉을 향한 설레임도 잠시 뿐, 높은 소득에 반드시 따라붙는 세금에 골치가 아파집니다. 고소득 사업자로 분류되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향해 과세당국은 단호하게 세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선수가 과세 처분에 억울함을 호소해도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금을 아끼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 경우도 있지만, 세법이나 국세청의 과세 기준이 선수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이승엽도 안 통해"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사진)입니다. 2003년부터 8년간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이 선수는 2011년 말 국내에 복귀한 후, 이듬해 5월 국세청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했습니다. 일본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국내 소득을 합쳐 성실하게 소득세를 납부했고, 세금 문제를 순조롭게 마무리짓는 듯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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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연히 주변 지인들과 세무사로부터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됩니다. 역외탈세로 도마에 오른 선박왕과 구리왕이 거액의 세금을 피한 '비거주자' 요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대해 '비거주자'로 인정받으면, 굳이 일본 소득을 국내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절세 노하우의 요지입니다.
세법상 비거주자는 단순히 과세당국의 판단 문제일 뿐, 국적을 바꾸는 문제도 아닌 만큼 '국민타자'의 품위도 지킬 수 있었죠. 이 선수는 지난해 5월 국세청에 자신을 비거주자로 인정해달라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낸 세금을 다시 계산해 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체류한 기간은 연평균 290일 정도로 비거주자 요건을 무난히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국세청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이 선수가 제기한 경정청구 자체를 거부한 것입니다.
국세청은 이 선수가 2006년부터 일본에서 받은 연봉 대부분을 국내에 꾸준히 송금했고, 2010년에는 부동산을 매입해 고액의 임대수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소득이나 생활의 기반이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세법상으로는 '한국 사람'이 맞다는 판단입니다.
조세심판원에서도 국세청의 과세가 맞다는 입장입니다. 애초부터 이 선수가 국내거주자로 판단해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갑자기 비거주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해석입니다. 결국 이 선수의 갑작스런 '세금 스틸'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 '저니맨'의 슬픈 양도세
팀을 자주 옮겨다닌 '저니맨(journeyman)'에게 내집 마련이란 사치였을까요. 최경환 NC다이노스 코치(사진)는 199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은 후 2000년 국내에 복귀해 LG트윈스에서 두산베어스, 롯데자이언츠, KIA타이거즈로 팀을 옮겨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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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롯데자이언츠 시절 '마지막 팀'이라는 각오로 부산에 주택을 구입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2007년 말 방출되는 설움을 겪게 됩니다. 2008년에는 KIA타이거즈에 둥지를 틀면서 부산의 집을 팔았지만, 거액의 양도소득세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양도세 비과세 요건인 1세대1주택자였지만, 거주기간이 1년을 넘지 못하면서 예외 규정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원정경기와 합숙훈련으로 인해 집에 들어가기 힘든 현실이었죠. 실제로 그의 주민등록상 거주기간은 2007년 1월, 단 3일에 불과했습니다.
심판원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원정경기가 많아 소속구단 연고지에 상시 거주하지 않아도 되고, 주민등록상으로도 1년 이상 거주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며 "불가피하게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근로소득자가 아닌 점을 고려해볼 때 과세가 정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야구선수의 거주기간을 두고 과세당국의 시각은 냉정했습니다. 최경환 코치는 야구선수가 집에 들어가기 힘든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이승엽 선수는 해외 거주기간이 길었음에도 '비거주자'가 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양도세를 비과세하는 거주 요건은 2011년 폐지됐지만, 비거주자 판정에 대한 국세청의 '고무줄 잣대'는 여전한 논란 거리입니다. 세법상 거주자 규정이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고, 과세당국의 재량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세법에서 거주자에 대한 판정 요건을 더욱 객관적으로 명시해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보완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