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변칙 증여에 대해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적폐로 규정해온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17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대다수 성실한 납세자에게 상실감을 주는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와 역외탈세에 대해 더욱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이날 확정한 '국세행정 운영방안'에 따르면 대기업·대재산가 변칙 상속·증여 검증 태스크포스(TF)가 내달부터 6개월간 운영된다. TF는 우회거래와 위장계열사 운영을 통한 과세회피 유형을 정밀 검증할 방침이다. 국세청이 검증에 나설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변칙 증여 행위를 사례별로 알아봤다.
# 자녀 회사에 떼어주기
기업 오너의 자녀가 운영하는 회사에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일감떼어주기' 방식은 국세청이 최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유형이다. 일감떼어주기를 한 기업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처음으로 증여세를 신고납부하라고 안내했고, 지난 6월말 과세기한이 종료한 후 현재 사후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의 오너가 기존에 거래하던 엔진 제조업체와의 거래를 줄이는 대신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부품을 사들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부품업체와 거래하던 물량을 아들의 회사에 매출을 모두 몰아주는 경우도 있다.
아예 대기업과 하청업체 사이에서 거래를 중단하고 대기업 오너 아들 회사와 하청업체가 새로 계약을 체결해 매출을 몰아주기도 한다. 국세청은 일감떼어주기를 통해 사업기회를 제공받는 회사는 사실상 이익을 증여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추징한다.
# 중간에 거래 끼워넣기
대기업과 하청업체와의 거래 중간 단계에 오너 자녀의 회사를 끼워넣는 수법도 있다. 하청업체가 가져가야 할 소득의 일부를 자녀의 회사로 넘기는 것이다.
가령 피자를 만드는 회사가 치즈 납품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오너의 딸이 운영하는 유통업체를 거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오너의 딸은 가만히 앉아서 마진을 붙여 치즈를 유통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녀 출자법인에 대한 부당지원과 변칙적 일감몰아주기 등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적극 차단하겠다"며 "협력업체 관련 불공정 행위의 탈세 관련성 여부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위장계열사로 간 이익
기업 오너의 자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위장계열사도 국세청의 검증 대상이다. 공식적으로는 오너가 경영하는 기업의 계열사가 아니지만 차명주식을 통해 자녀가 관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동통신사가 외주를 준 콜센터 업체의 실소유주가 회장의 손자인데 제3자에게 차명주식을 보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콜센터 업체가 벌어들이는 이익은 실소유주인 회장의 손자에게 흘러들어간다.
실제로 모 해운사 사주는 직원 명의로 조세피난처에 위장계열사를 만들어 선박 용선계약을 체결하고 해외에 재산을 은닉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세무사는 "대기업 세무조사를 보면 오너 일가의 차명주식에 의한 위장계열사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위장계열사는 변칙 증여를 통한 탈세와 비자금 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거액의 세금 추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