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대림 내에 대림코퍼레이션이 설립될 때만 해도 지배구조 측면에서 대림코퍼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대림산업을 비롯한 계열사들의 수출입 업무를 전담시키기 위해 별도로 만들어진 전문 무역상사일 뿐이었다.
1998년을 기점으로 대림의 지배구조는 싹 바뀐다. 대림코퍼가 1998년 대림산업의 지분 4.41%(이하 보통주 기준)를 장내에서 사들이며 지분을 0.62%에서 5.04%로 확대, 일약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로 급부상했다. 이듬해 8월에는 이준용(81) 명예회장 소유의 3.81%까지 전량 인수, 8.27%로 끌어올리며 공식 최대주주 지위까지 확보했다.
당시만 해도 대림은 외부의 경영권 위협에 취약한 편이었다. 이 명예회장이 1993년 12월 이재준 창업주로 경영권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림의 주력 중의 주력이자 대부분의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던 대림산업 소유지분이 보잘 것 없었다.
1997년 말 대림산업 대주주의 면면을 보면, 이 명예회장이 최대주주로 있었지만 오너 일가(23명)와 계열주주사 및 소속 재단(3곳)을 합해봐야 8.69%로 지분율이 10%가 채 안됐다.

데자뷔!
즉, 대림코퍼를 계열 출자구조의 최정점에 올려놓은 일은 자신의 지배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에 다름아니다. 당시 대림코퍼의 최대주주로서 지분 89.8%(1999년 말)를 소유한 이가 바로 이 명예회장이다.
(1998년 말 대림코퍼의 최대주주는 지분 38.80%를 소유한 대림엔지니어링이었다. 하지만 6개월 뒤 이 명예회장이 1대주주로 올라선 것을 볼 때, 이 무렵부터 자신을 정점으로 대림코퍼→대림산업으로 연결되는 사전 정지작업을 벌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대림코퍼가 사실상 지주회사로 변신하자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대림산업 지분 늘리기의 연속이었다. 1999~2000년에 걸쳐 장내매수와 유상증자 출자, 주식배당 등을 통해 14.15%까지 확대했다.
이후에는 대림산업이 나섰다. 2001년 9월과 2004년 1월, 11월 3차례에 걸쳐 발행주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840만주에 대한 주식소각을 실시함으로써 손 안대고 지분 확대를 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림코퍼가 현재 대림산업 지분 21.67%(754만1162주)를 소유하고 있는 이유다. 이외 대림학원 1.27%, 이 명예회장의 3남 이해창(48) 켐텍 대표이사 등 오너 일가 5명 0.18% 등 특수관계인을 합하면 23.12%다.
대림산업 지분 확보에 적잖은 자금을 들였을 테지만 사실 대림코퍼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천NCC, 대림산업 등 석유화학 계열사를 비롯해 주로 대림 계열사들의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며 돈을 쓸어담다시피 한 까닭에 곳간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대림코퍼가 대림산업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2000년까지 재무실적을 보면, 매출은 설립 7년만에 1조원을 넘어섰다. 또한 1995년부터 영업흑자를 내기 시작해 적게는 40억1000만원, 많게는 246억원 등 6년간 한 해 평균 161억원을 벌어들였으니 말 다했다.
결국 계열사들의 차고 넘치는 일감을 기반으로 개인회사를 키우고 이를 지렛대 삼아 무소불위의 지배권을 갖는 것은 이해욱(51) 대림 회장의 선대에 이미 모범(?)을 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족적 훑기?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말이다. 대림코퍼가 사실상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대물림이 존재 목적이나 다름없는 계열사들을 통합, 이 회장을 대림코퍼의 최대주주로 올려 놓은 일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11월 대림코퍼의 대림에이치앤엘(H&L) 흡수로 이 회장은 대림코퍼 지분 32.12%(236만5962주)를 확보해 2대주주로 부상했다. 이어 이어 2015년 7월 대림코퍼가 대림아이앤에스(I&S)마저 합병하자 52.26%(550만1679주)로 끌어올리며 마침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지분 승계에 마침표를 찍자 이 명예회장은 지분 정리에 나섰다. 소속 재단 등에 보유지분을 연쇄적으로 증여했다. 2대주주로서 소유 중인 42.65%를 2015년 9월 대림학원·대림문화재단·대림수암장학재단에 4.99% 증여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10월에는 대림문화재단에 5.01%, 잔여지분 32.65%는 통일과나눔재단에 증여했다.
계열 주주사들도 가세했다. 비록 후진적이라고 평가받아 온 대림코퍼→대림산업→오라관광→대림코퍼 순환출자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오라관광은 작년 3월 대림코퍼에 4.32%를 전량 자사주로 넘겼다.
이에 따라 현재 대림코퍼의 지배구조는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서 52.2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대림문화재단·대림학원·대림수암장학문화재단과 첫째동생 이해승씨 등 특수관계인 4명과 자기주식(5.07%)을 합해 67.34%(708만9700주)를 소유한 구조를 갖춰놓고 있다.

상상 이상!
대림코퍼는 이 회장을 춤추게 하고 있다. 대림코퍼로 갈아탄 이 회장의 주식가치가 폭발하고 있다. 내부거래를 통해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온 대림코퍼가 역시 내부일감을 기반으로 알짜 수익을 내왔던 계열사까지 흡수하자 돈을 쓸어담고 있다시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H&L과 대림I&S를 통합해 무역상사, 해운물류, ITC 등 3개 사업부문을 가지게 된 대림코퍼는 2017년 매출(별도기준)은 3조197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2조5600억원) 이후 2년 연속 증가추세다.
영업이익은 설립 첫 해 3개월을 빼고는 이후 단 한 번도 손실을 내지 않는 흐름을 이어가며 2017년에는 1350억원(영업이익률 4.23%)을 달성했다. 작년에도 나무랄 데 없다. 1~3분기 매출 2조3400억원에 영업이익 882억원(3.77%)을 올렸다.
비결이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다. 2017년 매출에서 내부거래가 1조원이 넘는 31.72%(1조140억원·여천NCC, 폴리미래 등 관계회사 포함)다. 주력사 대림산업 14.72%(4710억원), 대림과 한화의 합작(50대 50) 석유화학업체 여천NCC 10.24%(3270억원) 등 계열사들의 지원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당연히 대림코퍼가 벌어들인 수익을 가장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이는 이 회장이다. 대림코퍼는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이 회장이 주주로 등장한 2008년 이후로는 주당 낮게는 750원, 높게는 3100원 결산 현금배당을 풀었다. 총배당금은 한 해 적게는 55억2000만원, 많게는 228억원 총 1350억원이다. 이 회장은 대림코퍼 배당으로만 546억원을 챙겼다.
대림코퍼는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곳간이 차고 넘쳐왔던 터라 이렇게 배당을 하고도 현재 7048억원(2018년 9월 말 기준)에 달하는 이익잉여금이 쌓여 있다. 이 회장의 주식가치도 어마무시게 불어난 시기다.
대림코퍼의 주식이 가장 최근 거래된 시기는 2018년 3월. 대림코퍼가 계열주주사 오라관광 및 학교법인 대림학원의 소유지분 5.07%를 인수했을 때다. 당시 주당취득가는 8만1421원. 이해욱의 대림코퍼 지분 52.26%(550만1679주)가 4480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이 회장은 2016년 운전기사 갑질 논란을 비롯해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조사, 대림산업의 하청업체 갑질 의혹 등 최근까지 갖가지 돌발 변수와 맞딱뜨렸다. 작년 3월 대림산업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며 2선 후퇴를 결정했던 이유다.
1년만의 경영일선 복귀, 2006년 11월 부친이 2선으로 물러난 뒤 명실상부한 오너 체제로의 회귀는 대림코퍼 지분 52.2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대림을 장악하고 있는 흔들림없는 지배기반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