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화두로 의약품 공공성 강화를 내걸었다. 제약업계는 당근과 채찍이 묘하게 섞여 있어 환영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반발하기도 모호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집단 손해배상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국민청원검사제 도입은 리스크로 받아들인 반면 첨단바이오와 의료기기법 제정과 심사체계 개편, 해외진출 지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출처=아이클릭아트 |
◇ 손해배상 리스크에 상시 검사 부담까지
제약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문은 식품사고 기업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이다. 식약처는 기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적용 범위를 식품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오는 4월 도입되는 제조물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같은 연장선에서 부담이 크다. 제품의 결함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 제조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도록 한 탓이다.
제약사 중엔 건강기능식품을 비롯해 식품사업을 함께 하는 곳이 많고, 의약품 중에서도 먹는 약이 많다. 특히 제약업계는 최근 수익구조 다변화 차원에서 식품과 화장품 등으로 품목군을 더 다양화하는 추세다. 그만큼 손해배상 확대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오는 3월 도입하는 '국민청원 검사제'도 리스크로 꼽힌다. 식약처는 지난해 생리대 유해물질 파문이 번지자 일시적으로 가동한 국민청원검사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식약처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창구인 '친절한 식약처'를 개설하고, 청원이 접수되면 유해물질 검사를 해 그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결과가 긍정적이면 근거 없는 불안을 일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검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의견이다. 생리대의 경우 지난 여름 유해물질 논란이 제기된 후 12월 말에야 최종 결론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된 생리대 제품에 대한 대량 반품사태가 빚어지고, 불매운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식약처의 검사 대상에 오른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제품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제약업계는 특허 기반의 독과점 제품이 많아 안그래도 견제가 많다는 점에서 국민청원 검사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식약처가 식품이나 화장품 등 생활소비재 유해물질에 대해 연중 통합 위해성 평가에 나서기로 하면서 규제 비용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분야는 심사과정 자체가 이미 굉장히 까다로운데 각종 검사가 상시화하면 규제에 항시 노출되면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심사시기 단축과 바이오법 제정 등은 환영
첨단분야 '핀셋 규제 완화'에 대해선 환영했다. 식약처는 필수의약품과 함께 첨단 바이오의약품과 의료기기에 대해 신속 심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 조직공학제제, 융·복합제제 등 치명적인 질환 치료에 쓰이는 첨단바이오 의약품을 맞춤형으로 심사·지원하는 법 제정을 추진한다. 최근 혁신신약 개발에 나서는 제약사가 늘고 있는 만큼 수혜 기업도 많아질 전망이다.
또 인공지능(AI)과 3D프린팅 등 신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에 대해선 단계별 우선심사 시스템을 운영하는 내용의 특별법도 제정한다. 오는 11월에는 의료기기 허가와 평가, 보험을 담당하는 통합심사 시스템을 마련한다.
심사 기간 단축과 예측 가능성 제고는 제약업계가 그동안 식약처에 요구해온 대표 애로사항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바이오 사업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면서 바이오의약품의 고유특성이 반영된 심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행 심사 기준이 되는 약사법은 바이오의약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며 "별도 법안 제정과 심사 체계 마련은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제약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정책 역시 반응이 좋았다. 식약처는 '유럽연합(EU) 화이트리스트' 등재를 연중 추진해 식약처 서면확인서 없이 EU로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캐나다 보건성(HC), 독일 연방생물의약품평가원(PEI) 등과 바이오시밀러 및 백신분야의 심사자 교류를 추진하는 안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민간 차원에서 해외진출을 위한 해외 컨퍼런스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직접적인 결과물을 얻어내기 어렵다"면서 "국가 간 특정심사 면제 등을 담은 상호규약을 맺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규제 완화의 초점이 '의약품 공공성'에 맞춰져 있는 만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약업계는 혁신신약 개발 시 적절한 약가 보장을 가장 시급한 대책으로 꼽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첨단의약품과 의료기기 개발을 독려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가 보장"이라며 "국내에서 약가를 너무 낮춰 놓으면 해외진출 과정에서도 불리해 연구개발에 따른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