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이어진 폭염으로 배춧값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대형마트들이 정부 지원, 매입 물량 할인 등으로 행사에 들어가자 소비자들은 다가올 김장철에 대비하기 위해 오픈런하고 있다. 이같은 배추 가격 폭등에 포장김치 수요가 늘면서 포기김치도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 초까지 배추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배추김치 대신 총각김치로
지난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일대의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김치 매대에는 '매진' 문구가 줄지어 적혀 있었다. 매대가 텅 비어있는가 하면 기존 배추김치 상품 위치에 다른 종류의 김치가 채워져 있었다.
한 SSM에선 CJ제일제당 비비고의 포기배추김치(900g), 갓김치(900g), 썰은배추김치(1.8kg), 포기배추김치(1.8kg)가 놓여 있던 자리를 열무김치가 메우고 있었다. 또 대상 종가의 포기김치(900g), 맛김치(800g), 파김치(300g) 등이 매진이라 그 자리에 대상 종가 갓김치가 자리했다.
매장 관계자는 "배추김치는 전날에도 제품이 안 들어왔는데 오늘도 입고가 안 됐다"며 "비비고 배추김치의 경우 내일 입고 예정이지만 수량이 얼마나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고, 대상 종가 배추김치는 입고 날짜가 미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마트들의 최근 2개월 간 포장 포기김치 판매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롯데마트의 포기김치 판매량은 8~9월 기간 10% 증가했다. 홈플러스도 올 8월~9월 25일 기간 동안 포기김치 판매량이 5% 늘었다.
이처럼 배추김치 수요가 증가한 것은 김장 재료인 배추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올 여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진 탓이다. 현재 주출하 산지인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폭염 등에 따른 피해를 입으면서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배추 가격이 평년보다 크게 뛰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기준 배추 한 포기 가격은 9662원이다. 전년(6193원) 대비 56%, 평년(7217원)보다 34% 높은 수준이다.
대형마트 할인 공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주요 대형마트들은 배추 할인 판매에 들어갔다. 우선 이마트는 내달 2일까지 손질한 통배추를 6960원에 판매한다. 이는 신세계포인트 적립 시 20% 할인을 적용한 가격으로, 시세 대비 약 30% 저렴한 수준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배추는 오전 중에 품절되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오픈 1~2시간 이내에 배추가 완판되는 오픈런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마트는 일부 점포에서 고객 수요가 몰리는 것을 고려해 1인당 3포기만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 중이다.
현재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포장 김치류는 포기김치(배추), 총각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등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현재 배추 수급 이슈에 따라 포기김치 물량도 불안정해, 총각·열무김치 등 대체할 수 있는 김치상품군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슈퍼는 오는 6일까지 절임배추와 김장재료 사전예약 판매를 진행한다. 절임배추의 경우 '해남 절임배추(20kg)'와 해발 700m 고랭지 배추를 사용한 '평창 절임배추(20kg)', 해발 400m 준고랭지 배추를 사용한 '괴산 절임배추(20kg)', '영월 절임배추(20kg)' 등을 선보인다.
또 롯데마트는 기존에 롯데슈퍼에서만 판매하던 김치양념소와 절임알타리를 사전예약을 받아 판매하기로 했다. 김장 수요에 맞춰 올해 햇건고추 사전예약도 진행한다. 고춧가루 무료 제분 서비스도 제공한다.
롯데마트는 수요가 몰릴 것을 고려해 행사 상품을 기존 매대가 아닌 사전예약 기간동안 매장의 '도와드리겠습니다' 센터나 롯데슈퍼의 '안내데스크'에서 구매하도록 했다. 수령 희망일은 오는 11월 8일부터 12월 21일까지의 기간 중에서 고를 수 있다.
홈플러스는 다음 달 2일까지 배추를 농림축산식품부 연계 프로모션(농할) 할인 20%를 적용해 7990원에 판매한다. 포장김치 행사 품목을 2개 이상 구매 시 50% 할인해준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별도 구매수량 제한은 없다"면서 "다만 할인율이 높아질 경우 인당 구매수량을 제한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대형마트들이 이처럼 할인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산지직거래, 대량 매입 등을 토대로 배추를 저렴하게 미리 매입한 덕분이다. 이와 함께 농할과 자체 할인을 더해 한층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다.
롯데마트는 해남, 괴산, 평창, 영월 산지와 지난 8월부터 사전 협의를 진행해 마트와 슈퍼 통합 운영 물량을 확보했다. 이마트는 산지직거래를 통해 대량 매입한데다, 배추를 연중 저렴하게 파는 전략적 EDLP 품목 중 하나로 관리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배추는 무, 애호박과 같이 필수채소로 구분한다"며 "특정 기간을 정해 크게 행사를 진행하지 않고 상시 저가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치 대란' 언제까지
업계에서는 10월 초에도 고온 현상이 예상되면서 전년 대비 김장철 배추 시세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작년 11월 중순~12월에는 배추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올해는 배추 가격 오름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불어 품질도 작년보다 떨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배추 시세는 가을배추 수확량에 달려있다. 가을배추는 주요 산지인 강원도 고랭지에서 전국으로 확대되는 구조라 시세가 점차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가을 배추는 8월 중순~9월 초에 정식(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심는 것)한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으로 생육이 좋지 않은데다, 폭우까지 겹쳐 유실되는 물량이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가을배추의 주 산지인 해남이 폭우 피해가 컸고 충청 산지도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배추 수급 안정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지난 달 30일부터 가을배추 수확이 종료되는 12월 중순까지 배추 생육관리협의체를 운영해 생육상황, 기술지도 실적, 농협과 지방자치단체의 약제 지원 실적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9월 말이라 배추를 다 뽑고 새로 정식하기에는 김장철이 모두 지난 상태"라면서 "최대한 품위가 좋은 배추를 선별해 판매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겨울에 먹어야 하는 월동배추도 정식 시기에 비가 많이 와서 정식시기가 지연됐다"며 "배추가격 상승세는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