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정기 임원인사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말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던 것처럼 빠른 인사는 아니지만 올해에도 10월에는 인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정용진 회장이 부임한 후 첫 정기 인사라는 점에 업계의 관심이 높다. 정 회장의 인재 기용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다.
일각에서는 올해 인사 폭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전체 CEO의 40% 이상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가 단행됐기 때문이다. 또 정 회장은 올 초 부임 후 수시 인사를 강조해 왔다. 실제로 올해에만 3명의 CEO가 바뀌었다. 정기인사의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버그 패치' 인사
지난해 9월 말 단행된 신세계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정용진 회장(당시 부회장)은 체면을 구겼다. 정 회장이 중책을 맡겼고 연임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던 강희석 대표가 옷을 벗었다. 강 대표는 당시 이마트와 SSG닷컴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었다. 핵심 계열사를 모두 쥐고 있었던 정 회장의 '오른팔'이었다. 강 대표의 자리엔 '방계'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한채양 대표가 들어왔다.
지난해 연말 임원인사엔 이명희 총괄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에게 전권을 주고 경영을 맡겨왔지만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의 적자전환, G마켓과 SSG닷컴의 시너지 부재 등 침체가 이어지자 결국 판을 엎기로 결심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당시 인사에서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총괄 대표로 올라선 한 대표와 신세계 대표로 파격 발탁된 박주형 대표 모두 이 총괄회장의 '픽'으로 알려졌다. 조선호텔앤리조트와 신세계센트럴시티 등 비주력 계열사에서의 성과가 높이 평가됐다. 사실상 앞선 변화의 실패를 인정하는 '버그 패치' 인사였다.
다만 이 인사는 정 회장의 '재신임 여부'를 가린 건 아니었다. 엄마의 회초리에 가까웠다. 실제로 정 회장은 인사 5개월 후인 올해 3월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2006년 부회장 승진 후 18년만의 회장 승진이다. 지분 증여 등 승계 움직임에 앞서 그룹의 전권을 주고 성과를 내라는 요구다.
철밥통은 없다
회장직에 오른 후 정 회장은 달라졌다. 그간 꾸준히 신세계그룹의 오너리스크로 지목됐던 SNS도 끊고 경영에 집중했다. 취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지난 4월엔 정두영 신세계건설 대표를 '경질'했다. 6월엔 SSG닷컴의 이인영 대표와 G마켓의 전항일 대표를 내보냈다. 세 대표 모두 지난해 정기인사와 연초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CEO였다. 모든 CEO들에게 '안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신세계그룹의 정기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와 신세계, SSG닷컴, G마켓의 CEO가 교체됐다. 불과 1년 만에 핵심 계열사 대표를 또 교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마트는 고강도 구조조정 중이다. 3분기 흑자전환을 예고했다. SSG닷컴은 최대 숙제였던 투자금 상환 문제를 '일단' 해결했다.
정 회장이 취임과 함께 '수시 인사'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시기가 정해진 정기 인사에 억지로 대규모 인사를 낼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니온다. 이미 지난해 정기 인사에서 연임이 결정된 CEO가 연달아 교체됐다. 정기 인사에서 살아남은 CEO들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신상필벌' 인사가 CEO들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기가 짧은 CEO들은 '신상'보다는 '필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눈 앞의 실적에만 집중하게 된다. 혁신과 쇄신을 요구하면서도 수시 인사를 통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수시 인사는 보신주의를 불러온다"면서 "인사는 신상필벌 기준에 맞춰 과감하게 하되 임기 중에는 방향성을 믿어 주는 신뢰의 경영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