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회장' 승진한 정용진,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 2024.03.08(금) 17:03

18년만에 회장 승진…책임 강화
그룹 매출 첫 역신장으로 위기 상황
신사업 발굴·경영 쇄신 과제 맡아

정용진 신세계그룹 총괄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한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총괄회장으로서 총수 역할을 이어가나, 정 회장이 경영 전반에서 더욱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정 회장은 위기에 빠진 그룹을 다시 재도약 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그룹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뒷걸음치는 등 큰 위기에 빠져있다. 격변하는 시장 상황도 그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한편 고강도 경영 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

신세계그룹은 정 총괄부회장이 8일 회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부회장에 오른 후 18년만의 회장 승진이다. 이명희 회장은 그룹 총괄회장으로서 신세계그룹 총수(동일인)의 역할을 계속 한다.

그룹 측은 "이번 인사는 정용진 회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유통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위기 요인이 쏟아지고 있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신임 회장은 1968년생으로 경복고와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말 신세계 전략기획실 대우이사로 그룹에 입사해 지난 2006년 신세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부터 정 회장은 어머니 이 총괄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서왔다.

이 총괄회장이 이번 승진 인사를 통해 아들 정 회장에게 그룹의 거의 모든 전권을 행사하도록 지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총괄회장이 여전히 그룹 총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룹 체제가 변화한 것은 아니다. 추가 지분 증여에 대한 계획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총괄회장이 몇년째 경영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그룹 경영의 많은 부분을 정 회장에게 넘겨준 만큼, 정 회장이 해온 역할에 걸맞는 직함을 물려준 것으로 보인다.그룹 최대 위기

이번 승진 인사의 시기도 눈길을 끈다. 통상 오너 경영인의 인사는 그룹 정기 임원 인사와 같은 시기에 이뤄진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 평소보다 이른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 대표이사의 거의 절반을 물갈이했다. 정 회장의 승진은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나 단행됐다. 임원 인사에서 새 경영진을 대거 내세운 데 이어 오너가 직접 등판함으로써 그룹 쇄신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는 현재 그룹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신세계건설의 대규모 손실의 영향이 컸지만, 이마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계열사들도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계열사들을 포함한 연결 매출액도 29조4722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매출 31조원을 넘긴 쿠팡에 밀렸다.

유통 시장의 대세가 된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신세계그룹의 존재감은 아직 크지 않다. 쿠팡, 네이버, 신세계가 '3강'으로 분류되지만 앞의 두 회사와 신세계의 격차는 아직 크다.

신세계그룹도 이 같은 위기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그룹에게는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사업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할 과제가 있다"며 "한 단계 더 도약할 기로에 서 있는 신세계그룹이 정 신임 회장에게 부여한 역할은 막중하다"고 밝혔다.

M&A 광폭행보

정 회장은 이미 예전부터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지난 2013년 위드미(현 이마트24), 2015년 드림커머스(현 신세계티비쇼핑), 2016년 제주소주를 인수하며 편의점, 홈쇼핑, 주류사업까지 연달아 뛰어들었다. 2018년에는 미국 프리미엄 식품업체 굿푸드홀딩스를 인수하고 미국에도 진출했다. 2019년에는 그룹 통합 이커머스 사업인 SSG닷컴도 출범시켰다.

대형마트 사업이 둔화하자 집객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의 대형화 및 복합화를 추진하며 다양한 신규 브랜드도 내놨다. 이마트타운, 스타필드 등 복합쇼핑몰, 전자제품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잡화 전문점 삐에로쑈핑, 자체 호텔 브랜드 레스케이프·그랜드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2021년 SSG랜더스 창단식에 참석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 사진=신세계그룹

특히 2021년에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잇따라 단행했다. 패션 쇼핑몰 W컨셉, 야구단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를  품은 데 이어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이커머스 사업 규모를 크게 키웠다. 신세계그룹은 이 인수에 3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그룹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이커머스 강화를 위해 네이버와도 손을 잡았다. 정 회장은 당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당시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를 직접 찾아가 양사의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해 신세계그룹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보유했던 스타벅스커피코리아(현 SCK컴퍼니)의 지분도 추가 인수했다. 미국 본사와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한국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룹 정상화 과제

그러나 정 회장이 시도한 모든 신사업들이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부 전문점 사업은 수익성이 악화해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삐에로쑈핑은 일본 브랜드 표절과 애매한 가격대 등으로 논란이 됐다. 화제성이 떨어지자 수익이 악화하며 2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소주사업도 정 회장의 실패작 중 하나다. 그가 주도한 '푸른밤' 소주는 '정용진 소주'로 한때 각광 받았지만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해 결국 2021년 사업을 철수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세계L&B를 통해 '킹소주'를 내놓고 소주 사업에 재도전한 상황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달 23일 '신세계 남산'에서 열린 신입사원 수료식에 참석해 신입사원과 셀카를 함께 찍었다. / 사진=신세계그룹

무리한 M&A 역시 그룹에 독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룹의 외형을 성장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하면서 여러 자산을 유동화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직을 맡게 된 만큼 정 회장이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다. 우선 SSG닷컴 상장을 위한 실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 출범에 앞서 2018년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재무적 투자자(FI)들과 SSG닷컴을 상장하기로 약정했다. SSG닷컴은 지난해 손실을 줄이긴 했으나 여전히 적자 상태다. 상장을 위해서는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부진한 계열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쇄신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 회장은 이미 지난해 말 경영전략실을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개편한 후부터 고강도 쇄신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그는 지난해 11월 첫번째 경영전략실 전략회의에서 과거 일해 온 방식을 질책하며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남매 승계 언제쯤

정 회장이 보다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신세계그룹의 승계작업에도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신세계그룹은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이래 이명희 총괄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성장해왔다. 2000년대 말부터 정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 어머니의 역할을 조금씩 물려받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최종 의사 결정은 이 총괄회장이 전문경영인과 함께 했다. 

이 총괄회장은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일찌감치부터 시작해 회사를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으로 정리했다. 정 회장에게는 이마트 부문을, 정 총괄사장에게는 백화점 부문을 맡겼다. 그럼에도 이 총괄회장은 여전히 그룹의 두 축인 신세계와 이마트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며 경영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변화가 본격적으로 감지된 것은 2020년 말이다. 이 총괄회장은 이 때 정 회장과 정 총괄사장에게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일부 증여해 회사의 최대주주 지위를 물려줬다. 이 즈음부터 정 회장은 그룹의 이마트 계열사들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주요 임원인사들도 어머니를 대신해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이번 인사로 정 회장은 승진했지만 정 총괄사장의 직책에는 변동이 없다. 업계에서는 그룹 위기 상황에 대한 상징적인 인사 조치인 만큼, 당장의 후계구도가 크게 달라지거나 승계가 가속화 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 회장의 승진은 실질적인 승계 등의 문제가 본격화됐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측면이 크다"면서 "위기를 맞은 그룹 전반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타개할 수 있도록 정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차원의 인사로 보인다"고 밝혔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