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기 급성장했던 한정판 리셀 시장의 거품이 빠르게 걷히고 있다. C2C(소비자 간 거래) 기반으로 출발한 '크림'은 한정판 수요 위축 탓에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확장과 카테고리 다변화, 해외 투자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무신사 따라하기'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크림은 리셀 기반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바탕으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생각이다.
리셀 시장 한계 봉착?
크림은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가 출시한 서비스다. 2021년 스노우의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기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사업부문이 물적분할해 설립됐다. 2020년 3월부터는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리셀테크(한정판 재테크) 열풍이 불었고, 크림은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21년에는 스노우에서 분사해 독자 노선을 걸었다.
하지만 한정판 리셀 시장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매장 앞에 한정판 제품을 사기 위한 오픈런은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웃돈을 주고 신발을 사려는 수요도 줄었다. 리셀 플랫폼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리셀 플랫폼은 사람이 상품 검수를 직접 해야한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고 가품을 완벽히 걸러내기가 어렵다.
시장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결국 리셀 시장에는 마니아층만 남게 됐다. 팬데믹 시기 리셀 시장에 뛰어들었던 플랫폼들도 속속 발을 뺐다. KT의 '리플', 한화의 '에어스택' 등이 사업을 철수했다. 2018년 롯데쇼핑과 손잡고 사업을 확장한 '아웃오브스탁'도 경영난으로 최근 온라인몰을 닫았다. 무신사는 자사 한정판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의 적자가 이어지자 지난해 운영사 에스엘디티를 흡수 합병했다.
업계 1위인 크림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꾸준한 성장세에도 불구, 적자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크림의 개별 기준 매출은 1776억원으로 전년 대비 45.3% 늘었다. 하지만 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크림 관계자는 "한정판 스니커즈 수요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몇몇 카테고리에서는 추가금을 내고서라도 사고 싶어 하는 수요가 꾸준히 있어 리셀 시장 자체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성장 동력 모색
이에 따라 크림은 몇 년 전부터 고관여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스니커즈와 의류, 잡화를 넘어 피규어·굿즈·공연 티켓·트레이딩카드 등으로 리셀 품목을 넓혔다. 뷰티·테크·캠핑·가구·리빙에도 진출했다. 특히 2022년 9월부터 브랜드 입점을 시작하며 C2C에서 B2C로 확장했다. 일부 브랜드는 D2C(소비자 직접 판매)로 직접 판매에 나섰다. 현재 입점 브랜드는 1000개를 넘어섰다.
중고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8월 명품 거래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 8월 1~13일 거래액이 전년 대비 588% 급증했다. 최근에는 명품 거래 서비스 '부티크'를 '빈티지'로 개편하고 '중고' 탭을 신설해 접근성을 강화했다. 주력은 샤넬·에르메스·프라다 등 럭셔리 브랜드 거래다.
크림 관계자는 "크림은 트렌드에 민감한 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라 트렌드를 빨리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며 "공연 티켓과 굿즈를 묶어 판매할 수 있어 기획사나 주최측 만족도가 높다. 앞으로도 현시점에서 핫한 아이템들을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워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눈 돌린 크림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위축된 국내시장 대신 해외를 새로운 타깃으로 삼은 셈이다. 크림은 2023년 10월 일본 최대 한정판 거래 플랫폼 '스니커덩크' 운영사 소다(SODA)에 967억원을 투자해 지분 43.6%를 확보했다. 이어 태국 '사솜', 말레이시아 '쉐이크 핸즈', 인도네시아 '킥애비뉴' 등 동남아 한정판 거래 플랫폼에도 잇따라 투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 1위 중고거래 플랫폼 '스톡엑스'와 합작법인(JV)이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면 선택과 집중을 위해 일부 사업은 정리키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도입한 '내 폰 시세 서비스'를 오는 30일 종료한다. 소비자가 직접 중고 스마트폰을 사고팔 수 있었던 서비스지만, 앞으로는 판매 기능이 사라지고 구입만 가능하게 됐다.
'크림'과 '무신사'
업계에서는 크림의 B2C 확장 행보를 두고 '무신사 따라하기'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정판 리셀 플랫폼'에서 '패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무신사와 겹치는 사업군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실제로 크림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대부분이 무신사에도 입점해 있다. 크림의 '럭셔리'와 무신사의 '부티크', 크림의 '중고'와 무신사의 '유즈드' 등은 홈페이지 구성도 비슷하다. 크림의 '스타일' 탭에서는 이용자들이 직접 올린 패션 코디를 볼 수 있는데 무신사의 '스냅'과 흡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독 발매 상품이나 콜라보 상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크림과 무신사는 뷰티 카테고리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무신사는 2021년 무신사 뷰티를 론칭했다. 크림도 2022년 C2C 형태로 뷰티 카테고리를 도입했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사업자 회원에게 개방해 사업을 키우고 있다.
크림 관계자는 "대부분 브랜드가 멀티입점 전략을 쓰기 때문에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입점하는 경우가 많다"며 "리셀 기반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