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핵심 사업의 데이터는 일제히 '역성장'을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 위기의 내용이 복합적이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보험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색해본다. [편집자]
보험업계에 들이닥친 위험 중 가장 핵심적 위험을 꼽으라면 단연 '저금리'라 할 수 있다.
과거 판매했던 확정형 고금리 보험상품들로 인해 보험사들이 지고 가야할 역마진 부담이 커지고, 보험영업에서 발생하던 손실을 메우던 운용자산이익률 역시 저금리 여파로 낮아지면서 순이익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 저금리 장기화, 역마진 위험에 운용자산이익률 감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생명보험사들의 올해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573억원으로 전년동기 4조384억원 보다 24.3%가 줄었다. 1년새 순이익이 1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대형사들의 순이익 감소 규모는 30%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손보사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올해 손해보험사의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1996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9162억원 대비 24.6% 감소했다. 실손보험을 비롯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크게 오르면서 보험영업손실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생·손보 할것 없이 전년동기 대비 순이익이 4분의 1가량 줄어든 것이다. 수입보험료 증가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서 줄어든 수익을 채권매각을 통한 투자이익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영업손실을 메우던 자산운용수익률 역시 저금리로 인해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말 생보사 자산운용수익률 평균은 3.4%다. 2014년 4.5%였던 것과 비교하면 1.1%포인트 큰폭으로 낮아졌다. 지난해 상반기 3.7%와 비교해도 1년만에 0.3%포인트 줄었다. 손보사 자산운용수익률 평균 역시 3년간 3.4%에서 횡보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높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5% 이상 확정형 고금리 상품을 판매했던 보험사들의 부담이 커지는 이유다. 생보업계의 경우 연 6.5% 이상 확정고금리상품 비중이 아직도 전체상품의 10%를 넘어서고 있다.
대체투자,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운용수익률 제고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역마진, 수익감소를 타개할 대안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자산운용 수익률이 3%까지 내려오면서 기존에 예정이율 3%수준으로 판매했던 상품들 역시 확정금리상품과 유사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역마진은 지속적으로 점점 더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오는 2022년 보험산업의 구조를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새 보험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 역시 금리변동에 따른 영향이 클 전망이다.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부채를 가입당시 이자율로 산출하는 원가평가 방법에서 현재 시장금리로 재평가하는 시가평가 방식으로 전환된다. 과거 대비 금리가 큰폭으로 낮아진 만큼 도입시점에 보험사 부채는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건전성기준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이슈가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자본확충을 위해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 규모에 이르는 후순위채, 영구채 등을 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비용도 부담이다.
저금리 추이가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같은 영향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 역시 문제다.
◇ 불안한 보험사.."저금리 적응기간 필요해"
그동안 저금리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부터 저금리가 본격화 됐지만 미국, 유럽 등 보험산업 선진국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저금리 상황을 겪어왔다. 수많은 회사들이 부실화되고 문을 닫으면서 제도를 정비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와 저금리 시기가 약 20년가량 간극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저금리 대응을 위한 규제자체는 선진국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당국이 저금리에 앞서 각종 제도들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금리 상황에서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당장 보험사들이 받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저금리 경험시기와 규제적응 시기가 그만큼 짧았단 얘기다. 실제 2000년대 이후 저금리로 접어들면서 보험업계가 받는 충격은 더 컸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2000년대 이후 금리연동형 상품 판매를 확대하면서 금리연동형 비중을 최근 75%까지 끌어올렸지만 최근 보험시장이 역성장하면서 이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며 "금리연동형 상품들 역시 최저보증이율보다 금리가 낮아진 상품들이 있어 역마진은 계속해서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IMF외환위기로 인해 저금리 대응 제도들을 앞서 도입하면서 해외 보험 선진국들과 저금리 대응을 위한 제도적 격차는 크지않은 상태"라며 "그러나 보험사들이 저금리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가 도입됐고 그만큼 저금리에 대한 경험의 격차가 커 경험시차에 따른 괴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과정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인 제도를 도입해 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적응해 나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저금리 리스크를 지는 만큼 그에 따른 마진도 충분히 보장되는 형태로 가야 자본도 축적되고 보험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저금리 지속, IFRS17 도입 이후도 준비해야"
저금리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IFRS17 도입 시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욱 나이스 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예전에 판매했던 고금리상품 대비 금리가 낮아져 IFRS17 도입시점에 금리영향에 따른 충격이 상당히 클 수 있다"며 "저금리 기조가 계속된다면 금리변동폭은 이전처럼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IFRS17 도입 이후에는 금리보다 위험률 관련 영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회계기준에서는 보험부채의 가치가 변동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위험률, 즉 보험사고 발생률이 미래의 보험부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당기순익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이 수석연구원은 "현재 위험률이 미래의 보험부채 규모를 결정하는 만큼 적정한 보험영업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미래 재무안전성을 유지하는 길"이라며 "보험부채 규모가 동일하다고 해도 위험계수에 따라 요구자본이 커질수도 작아질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 장기화로 더이상 자산운용만으로 안전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운 만큼 보장성보험 판매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보장성보험 비중이 같다고 해도 인수위험에 대한 적정한 보험료를 받았는지, 보험계약을 계속해서 잘 관리하는지 등 보험의 질에 따라 향후 수익성, 건전성에는 큰 차이가 나 평가지표가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