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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앱 탐구생활]스마트폰 오려라? 우리은행 황당쿠폰

  • 2020.11.25(수) 13:33

"환전쿠폰, 오려서 보관" 권유…PC용을 모바일로 '복붙'
계좌번호복사·금리확인 등 불편…갈 길 먼 디지털전환

올해 1월 초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피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은행 모바일앱에서 환전신청을 했는데요. '재환전 쿠폰'이 떴습니다. 수수료를 깎아줄 테니 해외여행 후 남은 외화를 가져오라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우리은행 앱에 뜬 '재환전 쿠폰'. 오려서 보관하면 편리하다는 내용(빨간색 상자)이 담겨있다. 모바일 환경을 감안하지 않아 황당한 안내가 되고 말았다.
우리은행 앱에 뜬 '재환전 쿠폰'. 오려서 보관하면 편리하다는 내용(빨간색 상자)이 담겨있다. 모바일 환경을 감안하지 않아 황당한 안내가 되고 말았다.

이런 문구가 뜨더군요.

"쿠폰을 오려서 여권에 보관하면 이용하기 편리합니다."

세상에나! 종이 쿠폰도 아니고 스마트폰에 뜬 쿠폰을 오려서 보관하라니요.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인터넷뱅킹(PC버전)에 적합한 문구를 그대로 따오면서 '참사'가 빚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PC버전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용어로 '복붙(복사하여 붙여넣기)'이라고 하죠.

인터넷뱅킹만 되던 시대엔 출력 기능이 필수인 분야가 있었을 겁니다. 컴퓨터를 들고 다닐 순 없으니 종이로 출력해 다니라는 의미로 '인쇄' 버튼도 만들어놨고요. 실제로 우리은행 인터넷뱅킹 재환전 쿠폰 창에는 인쇄 기능이 있습니다.

모바일 시대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폰만 보여줘도 충분합니다. 바코드나 QR코드가 있다면 모를까, '오려두라'는 조언은 안 하니만 못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고객의 사용환경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닐까요.

대부분의 은행앱에는 계좌번호 복사하기 기능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줄 때 유용합니다. 손가락으로 계좌번호를 쿡 누르고 있으면 복사가 돼 카카오톡으로 쉽게 보낼 수 있습니다.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앱에 은행계좌를 등록할 때도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기능입니다.

토스는 은행앱에서 계좌번호를 복사하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복사한 계좌로 송금하세요'라는 안내창을 띄웁니다. 계좌복사는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거나 받겠다는 사전 신호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든 겁니다.

우측에 있는 '점 세개(፧)'를 눌러야 계좌번호를 복사할 수 있다. 다른 은행은 복사라고 표기하는 걸 우리은행은 유독 공유라고 표기해놨다.
우측에 있는 '점 세개(፧)'를 눌러야 계좌번호를 복사할 수 있다. 다른 은행은 복사라고 표기하는 걸 우리은행은 유독 공유라고 표기해놨다.

우리은행 앱은 어떨까요? 계좌번호를 쿡 누르면 '거래내역'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이 화면에선 복사 기능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숫자를 일일이 입력해 친구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앱 사용자들의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구글플레이 사용자 리뷰엔 이런 하소연이 올라와 있습니다. "복사 기능은 다른 여러 앱에 등록할 때 유용하게 쓰입니다. 사소한 것 하나가 앱을 잘 만들었다, 생각없이 만들었다가 되는 겁니다."

물론 계좌복사 기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숨겨놨을 뿐이죠.

계좌번호 우측에 있는 '점 세개(፧)'를 누르면 계좌번호 공유 기능이 나옵니다. 그걸 누르면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복사한 계좌번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복사'라고 해도 될 걸 굳이 '공유'라고 표기해놨습니다. 복사하고 싶은데 공유밖에 없으니 이용자들이 헷갈려합니다.

지난해 10월 '우리 SUPER 주거래 자유적금'에 가입했습니다. 급여나 공과금 이체 등 몇 가지 거래실적이 있는 경우 우대금리를 받습니다. 문제는 현재 우대혜택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못 받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저 현재 적용하는 금리만 나와있습니다.

우대금리를 제시하는 건 우리와 이것저것 거래하면 혜택을 주니 더 많이 이용해달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용자들은 무엇을 더 거래해야 우대를 받는지 모릅니다. 돈이 빠져나가게 자동이체를 해둬 놔두는 것이지 적금을 유지할 의욕도, 우리은행과 더 많은 거래를 할 유인도 떨어집니다.

우리은행 적금계좌의 금리조회에선 우대금리 내역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은행 적금계좌의 금리조회에선 우대금리 내역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조건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약관을 봐야 한다.

오히려 저축은행이 낫습니다.

웰컴저축은행의 경우 계좌번호 옆에 있는 '점 세개(፧)'를 누르면 이 적금의 우대조건이 무엇인지, 얼마나 충족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8회 이상 자동이체를 충족해야 금리 우대를 해준다면 현재 자동이체가 몇 회까지 실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반면 우리은행은 가입 당시 계좌약관을 찾아야 자신의 우대조건을 알  수 있습니다. 적금 붓는 고객 입장에선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이 최근 내놓은 '우리 200일 적금'은 그나마 봐줄 만한데요. 하지만 우대금리 확인까지 가는 절차(점 세개(፧)→계좌정보→계좌상세→금리조회→금리우대조건 상세보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우리금융그룹은 기회있을 때마다 "디지털 혁신은 이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선봉에 서겠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은행 앱을 보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꽤 크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최근에는 생체인증을 하려고 해도 계속 오류가 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얼마 전까지는 비대면 인증을 할 때 신분증 인식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나씩 개선해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앱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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