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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설계사는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나

  • 2021.09.07(화) 09:30

안정적인 일자리는 개인의 삶에 있어 중요하다. 일자리는 생존부터 자아실현까지 한 개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들은 모두 청년의 안정적인 일자리 대책을 약속하고 비정규직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이 활발하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열망하기에 대기업의 공개채용 계획은 뉴스에도 나오며,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 새벽공기를 마시는 청춘들도 많아진다. 그런데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겠지만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라 볼 수 있다. 특정 직업이나 일을 통해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며 퇴직까지의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자리의 영속성이 보장되고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험 모집인인 설계사는 좋은 일자리일까. 모든 보험사와 대리점의 관리자들은 '설계사를 하면 좋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등을 강조하며 일을 시작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들의 약속처럼 진짜 좋은 일자리면, 정착률이 높아야겠지만 실상은 처참하다. 1년을 버티지 못하는 설계사도 허다하고 이를 넘기더라도 2~3년 내 일을 그만두는 설계사도 많다. 이를 볼 때 보험 설계사란 직업은 관리자의 달콤한 말처럼 안정적이거나 예측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설계사를 조기에 그만두는 일이 많아질수록 '고아계약'이 늘어나 보험 소비자의 피해도 확대된다. 설계사를 권하는 말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큰 간극을 볼 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설계사는 좋은 직업일 수 있으나 초기 교육과 관리하는 방식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기에 안정적이지 못한 일이 되었다. 설계사가 매출을 높이는 방식은 보험 계약을 체결한 대가로 받는 수수료(Commission)다. 초년도 수수료의 최대치는 월납 보험료의 1200% 이하다. 소속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월납보험료를 10만원 체결하면 대략 100만원 내외의 돈을 수수료로 받는 구조다. 이것만 보면 나쁘지 않다. 설계사를 권하는 말처럼 높은 수수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매월 계약을 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국의 보험 모집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며, 인구감소와 더불어 고령화가 가속화되어 보험사나 대리점의 관리자가 원하는 장기인(人)보험을 지속적으로 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주변 지인에게 보험을 권해 체결하는 행운을 맞이하면, 다음 달 수수료를 받고 운이 나쁘면 소득이 전혀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해도 매달 맞이하는 마감 구조를 지속하기에는 불안 요소가 많다. 따라서 초기에 높은 실적을 올리는 우수한 설계사도 2~3년이 지나면 스스로를 불태우고 '번아웃(burnout)'을 경험한다. 특히 거의 모든 관리자가 신입 설계사에게 암보험이나 종신보험 그리고 운전자보험 등 장기인보험을 주변에 권하기를 강요하며, 이를 위한 기술만을 주입한다. 장기인보험의 장점은 선취수수료 구조로 초년도 수수료가 다른 보험 종목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가망고객에게 제안 후 운이 좋아 계약을 체결하면 그 뒤에 고객과 관계를 이어나가 추가적인 계약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고객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하는 늪에 빠지게 된다. 끊임없이 피보험목적물인 새로운 사람을 찾고 설득해야 하는 긴장감은 설계사의 삶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에 지쳐 설계사를 그만두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인보험만 강조하는 현실에서 설계사란 직업은 결코 좋은 직업이 될 수 없다. 설계사란 직업을 통해 오랜 시간 일하며 미래를 꾸릴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계사를 좋은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보험 계약 모집으로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수수료 구조를 만들어 주면 된다. 현재 모든 보험사와 대리점은 장기 인보험을 모집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보장성보험도 장기인보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1년 마다 의무적으로 갱신해야 하는 자동차보험도 있고 동일하게 보험기간이 1년인 다양한 일반보험이 있다. 매월 10대의 자동차보험을 모집하면 다음해 동일하게 갱신 계약이 도래한다. 보험료를 약 50만원 내외라고 가정하면 매달 500만원의 자동차보험을 체결하는 것이다. 수수료를 약 7%라고 가정했을 때 35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설계사 중 최상위는 높은 수수료 매출을 올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신인 설계사의 경우 평균 200만원 내외의 수수료 매출이 관찰된다. 이 때 매달 평균소득의 17.5%에 해당하는 안정적인 소득이 지속되면, 이는 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일반보험도 보험 기간이 1년이기에 계약을 체결해 놓으면 매년 반복적으로 신계약을 받을 수 있고 여기서 반복되는 수수료도 무시할 수 없는 기초 매출이 된다. 이런 보험 종목의 최대 장점은 지속적으로 고객과 접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설계사 수수료의 근간인 장기인보험을 제안할 기회를 계속 만들 수 있다. 자동차보험 갱신 시 운전자보험의 개정 사항을 안내하거나 생산물배상책임 등을 갱신하며 임직원 단체보험이나 대표이사의 퇴직과 관련된 종신보험 등을 제안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보장뿐만 아니라 보장 이외 상품으로 소득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것도 전략이다. 가령 연금저축보험을 연금저축펀드로 이전하거나 퇴직연금 등을 모집하게 되면 매년 수수료가 발생한다. 특히 연금은 기간이 길어 오랜 시간 예측 가능한 수수료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장기인보험의 선취수수료에 비해 턱없이 작아 보이지만 여러건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최근 우수한 많은 설계사들이 연금저축펀드나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결국 예측 가능한 수수료 구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장기인보험은 달콤하다. 계약만 지속되면 설계사가 높은 수수료 매출을 올리며,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장기인보험을 매달 많이 체결하는 것은 어렵다. 모집 시장의 포화와 고객의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에 설계사도 한 보험 종목에만 집중하면 스스로 지쳐 쓰러지게 된다. 다양한 보장 및 비보장 종목을 다뤄 기초 수수료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인 설계사 교육에서도 장기인보험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는 비전과 구조를 만들어 주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식과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안정적으로 일하는 설계사가 많아질수록 보험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짐을 잊지 말아야 하며, 설계사가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도록 관련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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