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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설계사가 집중해야 할 일

  • 2021.10.12(화) 09:30

상경한 사람이 서울역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은 무엇일까. 아마도 택시 기사가 운전을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누구나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기대하는 것이 있다. 의사를 만나면 병의 치료, 요리사를 만나면 맛있는 음식, 교사를 만나면 배움을 기대한다. 요리를 못하는 요리사를 상상할 수 없듯 누구나 특정 직업인을 만나는 목적은 그 사람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보험설계사를 만나는 목적은 '설계를 통한 상품 가입'에 있다.

'설계'와 '가입'에서 더 중요한 핵심은 설계다. 보험은 스마트폰이나 냉장고처럼 만들어진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피보험목적의 특성을 파악한 후 설계를 통해 해당 상품을 맞춘다. 이 과정이 없으면 보험 상품의 가입은 불가능하다. 계리사가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더라도 설계를 거치지 않으면 계약 체결이 어렵다. 동일하게 사고 후 능력 좋은 손해사정사를 만나도 설계가 잘못된 계약은 보험금 청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쉬운 예로 암진단비가 없는 보험 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암에 걸려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다. 암진단비 특별약관을 선택하는 행위가 곧 설계다.

이처럼 설계는 보험료가 사고를 만나 보험금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보험사 입장에선 보험료를 받아야 하고 사고라는 불행을 만난 사람은 보험금을 청구해야 한다. 이 때 설계가 생략되거나 잘못되면 아무도 보험 상품에 가입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계사를 만나면 올바른 설계를 통한 보험 가입을 기대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설계사가 설계를 어려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리 설계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은 고객의 필요성을 충족하기보단 '가입'을 시켜 수수료를 받기 위한 설계사의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입'에 방점을 찍는 것은 보험을 둘러싼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된다. 불완전판매의 대다수가 당장 계약 체결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품을 부실하게 설명해서라도 '가입만 시키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관행이 대면채널 내부에 팽배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설계사는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고객을 상실하고 대면채널 전체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21년 상반기 전체 금융민원 중 58.8%가 보험에서 발생한 것은 '올바른 설계'가 아닌 '가입을 시키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보험 모집 시장의 주요 흐름의 중심에는 기존 계약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리모델링(remodelling)이 자리잡고 있다. 가구 당 보험 가입률이 98%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더 이상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계약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신계약 체결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진다. 따라서 최근 발생한 대다수의 신계약은 곧 기존 계약을 대체한 승환계약인 상황이 관찰된다.

그런데 기존 계약을 분석하고 더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는 개별 설계사의 상당한 능력이 요구된다. 가령 상법 651조 계약 전 알릴의무에 따라 고지사항이 없고 실손의료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손해보험사의 종합형 상품이나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과 여러 특약을 설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미 2~3개의 보험 상품을 가입한 사람의 기존 계약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수준 높은 역량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다수가 신계약을 위해 기존 계약을 부당 해지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감독 당국도 부당 승환계약에 대한 감독과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설계라는 본질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물론 설계 및 보장분석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설계사의 노력이 필요하고 소속 조직의 교육적 뒷받침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전문성을 갖추면 다른 설계사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장 포화 상황에서 기존 계약의 문제점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진단하여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고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계사는 설계를 잘 해야 하고 다른 설계사가 잘못한 설계를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실천하는 것이 곧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하지만 많은 설계사와 관리자는 여전히 가입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소비자가 설계사를 만날 때 기대하는 것과 상당한 간극이 있다. 또한 판매에만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설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보험금 청구, 세무, 노무 등 설계 외적인 방법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려고 한다. 물론 설계사가 청구까지 잘하면 좋겠지만 이는 손해사정사의 고유 업무다. 청구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설계에 있다. 쉽게 설계사가 본연의 일을 잘해야 손해사정사도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험 소비자가 설계사를 만났을 때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설계라는 본질에 집중해야할 시기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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