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고금리까지 시장을 덮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가계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제자리인데 나가는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최전방 방위선이자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금융회사에 리스크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주무부처 수장들은 물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낼 정도다.
다만 정작 금융회사들의 체감도는 업권별로 다른 모습이다. 은행의 경우 가장 많은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반면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은 최악의 경우 일부 회사의 부실화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착시 있다는 은행, 그래도 '덜' 떠는 이유
국내에서 시장에 가장 많이 자금을 다루는 기관은 단연 은행이다. 제1금융권인 만큼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많고 은행 역시 수백조원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한 만큼 리스크 역시 촘촘하게 관리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은행들이 발표하는 건전성 지표는 매우 우수한 수준이다.
다만 현재 국내 은행의 건전성에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만기연장, 이자상환 유예 등의 정책을 펼치며 아직 부실화되지 않았다고 분류한 대출채권 규모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지난 5월말 기준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을 살펴보면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0.19%, 기업대출의 연체율은 0.27%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이 위기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인 LCR커버리지 비율 역시 대부분의 은행이 100% 가량을 충족하고 있다. 한달간은 자금이 계속 유출되기만 해도 은행이 버틸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양호한 건전성 지표를 보여주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달라고 요청중이다.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와 함께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리면서 부실화하는 대출채권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당장 금융당국은 최근 금리상승을 고려할 때 대출금리가 7%에 다달으면 대출취약자의 부채는 3월말 기준 254조원에서 336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은행들도 이에 호응은 하겠다고 답하고 있지만 당국이 원하는 수준에 맞출지는 의문이라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2분기에 주요 시중은행별로 1000억원 규모의 추가 충당금을 적립할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중 은행권이 취급한 대출 취급액이 가계와 기업을 합쳐 32조9000억원 가량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규모가 크지는 않다. 당장 코로나19 대유행이 퍼졌을 당시 은행들의 분기당 평균 충당금 적립액은 약 6210억원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충당금을 적립해 둔 규모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미래 시나리오별로 적립을 하고 있다"며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더라도 현재 은행들은 이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들이 취급한 대출의 80%는 사실 보증이나 담보가 있는 대출"이라며 "자산가격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하락할 수는 있지만 회수가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실제 은행 대출중 위험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취약차주의 경우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공공기관이 보증을 섰다. 이러한 보증부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이들 금융공공기관들이 대위변제해야 한다.
은행들이 취급한 대출중 20%가량이 금융공공기관의 보증부 대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회수가 가능하다.
제2금융권은 '덜덜' 떤다
은행과 달리 저축은행, 보험사, 카드사 등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은행과 가장 비슷한 영업행태를 보이는 저축은행은 은행에 비해 취약차주들에게 내어준 대출 비중이 높다. 여기에 다른 금융기관에서 이미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들의 비율도 높다. 그만큼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대출이 많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취급한 대출들의 성격도 저축은행이 부담을 져야 하는 대출이 많다. 은행과 달리 가계대출의 경우 대부분이 신용대출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기업대출의 절반 가량은 현재 가장 변동성이 크다는 부동산 시장에 집중돼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향후 리스크에 대해 종합적인 점검에 나서고 있다"라며 "충당금을 적립하더라도 분기마다 정리하는 부실채권의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온전히 회수할 대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보험 가입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투자해 수익을 내는 보험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기대할 수 있는 자산운용수익이 줄어들어서다.
그나마 보험사들은 금리인상기의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채권시장에 주로 투자한 면은 위안거리라는 평가도 있지만 재무건전성이 발목을 잡는다.
보험사는 일정 수준의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은행으로 따지면 LCR비율과 비슷한 개념이다. 보험계약자에게 채무를 돌려줄 수 있을 만큼 자본을 적립해야 한다.
문제는 보험사가 주로 투자한 채권의 경우 금리 상승기에 투자자산(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하면 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RBC비율이 하락하는 영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1분기 기준 생명보험업계의 RBC비율은 179.7%, 손해보험업계의 RBC비율은 181.3%가량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의 권고치 150%보다는 높지만 계속해서 그 비율이 하락하는 중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하면 보험사들 역시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카드사와 캐피탈회사 등 여신전문업계도 고민은 깊다. 이들이 내어준 대출 역시 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취약차주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아서다.
은행이나 저축은행은 금리인상기에 수신금리를 올려 자금조달에 나설 수도 있지만 여신전문회사의 경우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라 시장금리 인상에 따른 고민도 커지고 있다.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여신전문금융회사채 AA+ 3년물 금리는 4.302%로 집계됐다. 3년물 금리는 이달 들어 약 10년만에 4%를 넘어서는 등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채 등 채권을 발행하면 그 투자자에게 금리라는 명목의 수익률을 되돌려 줘야 하는데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카드사와 캐피탈사 등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며 "비용은 늘어만 가는데 내어준 여신의 회수가 불투명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익방어가 가능한 리볼빙, 단기대출, 장기대출 등에 대해 금감원이 관리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온 상황"이라며 "하반기는 사업확장보다는 생존에 힘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