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횡령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 횡령사고 이후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도·감독을 강화했지만 역대급 규모의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책무구조도' 작성 등을 골자로 한 예방 중심의 금융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규모가 큰 은행과 금융지주부터 개선된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시행까지는 관련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금융사들은 태스크포스(TF)에 직접 참여했던 만큼 법 개정 이후 책무구조도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고로 인해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결국 내부통제 미흡…징계는 누구까지?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BNK경남은행에서는 562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의 약 700억원 횡령 사건 후 1년여 만에 벌어진 대형 횡령 사건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지난 2007년부터 올 4월까지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한 간부급 직원이 횡령·유용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 사고 후 전 은행에 자금관리체계 등 자체 점검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경남은행은 7년 이상 진행된 직원의 횡령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금감원은 이번 금융사고와 관련해 내부통제 실패에 책임이 있는 관련 임직원에 대해 단호하고 엄정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금감원, 경남은행 562억원 횡령사고에 "PF 전수조사"(8월2일)
BNK금융지주는 지난 4일 빈대인 지주 회장 주재로 긴급 그룹 전 계열사 경영진 회의를 열고 근본적인 쇄신책 마련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사고발생 후 강력한 처벌 등을 강화하는 대신 금융사 스스로 자율성과 책임성 있는 내부통제를 유지토록 하는 등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춘 논의 결과물이다.
방안 핵심은 책무구조도를 도입해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다. 책무구조도란 각 임원에 책임지는 내부통제 항목을 기재해두는 것을 말한다. 책무구조도를 통해 사고 발생과 관련한 내부통제 책임이 있는 임원을 특정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징계나 처벌이 가능하다. 현재 금융권에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처벌 범위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책무구조도 도입, 언제부터
금융위원회는 제도개선 방안 발표 이후로 금융사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내용을 구체화한 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법 개정 후 1년 이내 은행과 지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관련기사:'책임자' 없었던 금융사고, 책임자 찾는다(6월22일)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이 책무구조도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분위기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달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를 법령 통과 후 조기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신한금융 측은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업무 진행과정에 엄격해져 영업력이 저하될 우려도 있지만 고객을 두텁게 보호해 신뢰를 얻으면 장기적으로 회사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관건은 법 개정 시점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금융권 일각에선 책무구조도 도입 등 내부통제 관련 제도 개선이 선제적으로 도입됐다면 경영진 처벌도 가능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 발생한 횡령 사고는 특정 업무(IB·부동산PF 등)에 장기 근속한 직원에서 출발했다"며 "책무구조도를 통해 각 부서별로 업무와 해당 임원들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면 이들을 적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책무구조도 도입 전이라 임직원의 책임 소재 범위를 명확히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에도 거액의 횡령이 7년여에 걸쳐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은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책무구조도가 있었다면 해당 임원뿐 아니라 최고위 경영진까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사들과 논의하면서 관련 규정과 조문 작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를 통한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고 내년 총선도 앞두고 있어 정확한 도입 시점을 거론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 사고 등을 계기로 되도록 도입을 앞당길 동력은 생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