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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50년. 1978년부터 사장을 맡아 아직까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 삼성그룹 내에서 이건희 회장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회장'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 바로 이수빈(76) 삼성생명 회장이다.
그의 이력은 화려함 그 자체다. 1965년 삼성에 입사해 13년만인 1978년 제일모직 사장에 올랐고, 1980년 제일제당 사장, 1984년에는 삼성항공 사장을 맡았다.
1985년부터 89년까지는 삼성생명 사장을 지냈고, 회장 비서실장을 거쳐 1995년부터는 삼성생명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2002년 이후에도 삼성생명 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장이 직업'이다.
삼성 최고참 원로인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룹내에서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헤아릴 줄 아는 인물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이기도 하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필요할때면 삼성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며 그룹 경영을 맡긴 것도 그였고, 2010년 이건희 회장 복귀를 요청하는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의 의지를 이건희 회장에게 직접 전달한 사람도 바로 이수빈 회장이었다.
이 회장이 이처럼 오랜 시간을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좌우명을 드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순위덕(以順爲德), '순리를 좇아 덕을 쌓는다'는 의미다. 무리한 의사결정은 결국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회장에 대해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여기에 있다. 오랜기간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으며 체득한 그만의 비결인 셈이다.
이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지만 마냥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80년대 후반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방생명의 이름을 삼성생명으로 바꿨고, 90년대 후반 구조조정위원장을 맡아 그룹 전체의 체질개선을 주도하기도 했다.
삼성 한 임원은 "이수빈 회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라며 "온화한 성품으로 신망이 높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치밀한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래사람을 끌고 가기보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임원은 "안팎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온 삼성의 문화에서 이수빈 회장은 보기드문 사례"라며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도 오랜기간 자리를 지켜온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지금도 중요한 삼성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해말 삼성사회공헌상,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등에서도 이 회장은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인 만큼 당분간 이수빈 회장이 이 역할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입사 50년을 맞은 이수빈 회장의 역사는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