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100만대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수입차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車=사회적 지위'라는 등식이 통용된다. 그덕에 수입차 사장은 고속성장 중이다. 조만간 수입차 점유율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부실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현 주소와 풀어야할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회사원 박 모씨(26세)는 최근 3250만원짜리 수입차를 구입했다. 오래 전부터 취직을 하면 꼭 구입하려했던 일종의 '로망'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구입을 망설였다. 연봉 2800만원을 받는 신입사원인지라 자신의 연봉보다 훨씬 비싼 가격의 차를 구입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매장 직원이 설명한 유예할부 프로그램에 귀가 솔깃해졌다. 선수금 980만원을 내고 매달 12만원씩 36개월만 내면 된다는 말에 구매를 결정했다.(단, 36개월 뒤에는 남은 차값을 모두 내야 한다.)
#대기업 차장인 우 모씨(41세)는 최근까지 5400만원짜리 SUV 수입차 구입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아이들이 자꾸 커가자 큰 차가 필요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산 준중형 세단으로는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를 감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3개월의 고민 끝에 결국 포기했다.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매월 내야 할 금액이 부담스러워서 였다. 그는 "지금도 은행 대출금에 아이들 교육비 등 생활비 맞추기도 빠듯하다"면서 "여기에 차 때문에 더욱 큰 경제적 부담을 질 수가 없었다. 유지비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현재 국산 중형 SUV를 알아보고 있다.
수입차 전성시대다. 도로를 누비는 차량의 10대 중 2대가 수입차다. 서울의 경우 도로에서 체감하는 수입차 숫자는 더 많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국내 수입차의 성장 속도는 빠르다. 한때 '시장이 다르다'며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현대·기아차도 이젠 수입차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국내 수입차 시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외형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데 내용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실한 A/S, '눈가리고 아웅'식의 할부제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년 전부터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눈에 띄는 개선은 없다. 일각에서 수입차 거품을 우려하는 이유다.
◇ 수입차 인기 고공행진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국내 수입차 시장은 작년 10월 누적 1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 5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16만4118대다. 지난 87년 국내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이래 27년만이다. 수입차는 매년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KAIDA가 국내 수입차에 대한 통계를 잡기 시작한 지난 94년 한해동안 수입차 총 판매대수는 3865대였다. 그랬던 것이 지난 2012년 월 평균 1만대 판매(1만904대)를 돌파한 이래 2013년 1만3041대, 2014년 1만6363대로 매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이미 월 평균 1만9111대가 판매됐다.
속도도 빠르다. 국내 시장에서 한해 동안 판매된 자동차 수 대비 수입차 점유율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12년이다. 개방한 지 25년만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난 66년 수입차 시장을 개방한 이래 33년만인 지난 1999년에야 수입차 점유율 10%를 달성했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8년이나 빠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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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율 10% 이후의 모습도 달랐다. 일본은 점유율 10%를 돌파한 이후 불황을 맞으면서 수입차 점유율은 1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음에도 수입차 점유율은 계속 상승했다. 작년에는 15%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2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이처럼 단기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과거 수입차는 소위 '있는 자'들만의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사회적 지위'라는 공식이 통하는 곳이다. 수입차는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한 것은 물론 '로망'이 됐다.
지난 2007년 수입차 판매가 연간 5만대를 넘어섰다. 이때를 기점으로 수입차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봤다. 2007년 이전까지 한국 시장은 수입차 업체들에게 작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연 판매 5만대를 돌파하자 수입차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내재돼있는 폭발적인 소비력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수입차 업체들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가격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가격 문턱이 낮아지자 '나도 수입차를 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입차 판매는 급증했다.
◇ 화려한 외형 뒤에 낀 거품
수입차들이 계속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수입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수입차 업체들이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입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로망을 업체들이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수입차를 소유해야 할 명분을 제공하는 등 마케팅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수입차의 저변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수입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수입차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굳이 왜 수입차를 구입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를 원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명분을 제시한다면 소비자들이 무리해서라도 수입차를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
업계에서는 수입차 업체들이 파격적인 가격할인 프로모션과 더불어 연비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파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을 통해서는 수입차에 대한 가격부담을 일시적이나마 줄일 수 있다. 진입 문턱을 낮추는 셈이다. 이어 연비를 강조하는 것도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를 선택할 명분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국산차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고 연비도 좋다'는 설명은 수입차를 선택할 충분한 명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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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 일각에서는 수입차 판매가 급증한 까닭에 대해 수입차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을 수입차 업체들이 마케팅을 통해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대부분은 '국산차보다 연비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며 "사실 연비적인 측면은 운전자의 습관, 도로 환경 등에 따라 변화가 심한 데다 국산차들도 이미 상당부분 수입차에 근접한 연비를 갖췄다. 소비자가 명분을 원하고 우리는 그것을 주면 서로가 윈윈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업체들이 대부분 자사 브랜드 내에 파이낸스 업체를 두고 유예할부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일단 쉽게 수입차를 소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그 이후의 프로세스는 소비자 책임이다. 소비자가 업체와의 계약을 지키든 못 지키든 업체들은 수익을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의 수입차 소유욕을 업체들이 마케팅을 통해 잘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국산차 업체 관계자는 "최근 들어 수입차 A/S에 대한 불만, '카푸어' 양산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급하게 성장한 국내 수입차 시장의 어두운 단면"이라며 "판매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사후 관리가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수입차 시장의 거품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 '외형 커졌지만…' 가격·A/S 문제점 여전
수입차의 질주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특히 지금껏 국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현대·기아차에게 수입차의 급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현대·기아차와 수입차 사이의 가격 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은 대거 수입차로 몰려갔다. 현대·기아차는 시장 수성(守城)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미 고착화된 트렌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수입차로의 이동을 주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수입차가 주는 메리트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수입차를 선택함으로써 치러야 할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A/S와 가격은 여전히 소비자들이 수입차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초 수입차 구매를 고민했다가 포기한 소비자들이 꼽은 수입차 구매 포기 이유 1위는 '가격·구입조건'이었다. '가격·구입 조건 때문'이라고 답한 소비자의 비율은 지난 2013년 24%에서 작년 32%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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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차 고려 후 구매하지 않은 이유 Top 5(자료:컨슈머인사이트, 단위:%) |
A/S도 마찬가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A/S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응답자는 전체의 10%를 차지해 '가격·구입 조건' 다음으로 수입차를 구매하지 않은 이유 2위에 올랐다. 특히 'A/S에 대한 불신'은 지난 2013년 4%에 불과했던 것이 작년 10%까지 뛰어올라 소비자들이 수입차 메이커들의 A/S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에는 2%에 불과했었다.
이어 '외관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6%, '공간여유가 없어서' 5%, '연비가 좋지 않아서' 4% 등으로 조사됐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은 수입차를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가격 부담과 A/S가 국내 자동차 메이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생각때문에 수입차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최근 들어 수입차 A/S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미지와 만족도가 국산 메이커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면서 "수입차 메이커들의 실질적인 A/S품질 개선과 이미지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향후 수입차 시장 확대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