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가 미국 본토에서 채굴된 원유를 도입하며 미국산 원유가 국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40년 만에 미국의 원유 금수조치가 해제돼 문이 열린 가운데 품질과 경제성도 우수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미국산 원유 도입이 주목받는 것은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큰 국내 정유사들에게 도입선 다변화 길이 열린 까닭이다. 당장 미국산 원유 도입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긴 힘들지만 선택지가 추가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 WTI-두바이유, 가격 차이 줄었다
28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11월 1주 기준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 당 45.52달러, 두바이유 가격은 44.66달러를 기록했다. 두 지역 원유 가격 차이는 배럴 당 0.86달러로 3개월 전(9월 1주 배럴 당 1.63달러)과 비교해 절반 가량 줄었다.
▲ 그래픽: 유상연 기자/prtsy201@ |
WTI 가격 약세 이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노력 등의 소식이 전해지며 유가가 상승하자 북미 지역 원유 생산자들이 생산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미국 원유 시추기 수는 전주보다 19기 증가했고, 석유재고 역시 원유와 휘발유 등 모두 늘었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 들어 유가가 점진적 상승 추세를 보이자 북미 지역에서 원유 생산량을 늘려 공급이 늘었고, 이는 WTI 가격 약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WTI 가격이 떨어지면서 과거에 비해 미국산 원유의 경제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GS칼텍스는 미국 본토에서 채굴된 원유 도입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경제성을 이유로 꼽았다. 중국과 일본 정유사들 역시 미국산 원유 구매를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 관계자는 “WTI 가격이 떨어졌고, 글로벌 원유 수송운임도 하락했다”며 “이번에는 멕시코산 원유를 함께 운송함에 따른 부대비용 절감 효과 등으로 경제성이 확보돼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성급한 기대는 금물
하지만 이번 도입으로 미국산 원유 도입이 활발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번에 도입된 물량은 100만 배럴로 국내 정유사들의 하루 평균 정제량(약 73만8000배럴)의 약 1.35배 수준에 불과하다.
정유사업 규모가 가장 큰 SK이노베이션 하루 정제량이 111만5000배럴임을 감안하면 100만 배럴은 하루 투입하기에도 적은 규모다. 다른 정유사들 역시 미국에서 들여온 원유를 이틀이면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그 만큼 물량 면에선 의미가 크지 않다.
또 여전히 중동산 원유에 비해 국내로 들여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중동산 원유가 국내로 들어오는 데 약 2~3개월이 걸리는 반면 이번에 도입한 미국산 원유는 구입 후 4개월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파나마 운하가 확장 개통했지만 원유를 싣고 이동하는 VLCC가 통과하기는 어려워 기존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정유사들이 경제성을 확보해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검토해봤지만 아직은 실익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또도 국내 정유설비들은 대부분 중동산 중질유에 맞춰져 있어 미국산 경질유가 들어오면 설계변경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미국산 원유 도입 길이 열린 만큼 가격 협상 등 협상 지위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미국의 원유 수출이 본격화되면 중동국가들은 판매처 확보를 위한 조치에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산유국들의 공급경쟁이 심화되면 수입국 입장에선 기존보다 더 나은 조건에 원유를 수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며 “미국의 공격적인 원유 공급으로 지금보다 가격이 떨어져 경제성이 생긴다면 그때는 도입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