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웬 카세트 플레이어?"
KT가 이달 초 카세트 플레이어를 정식으로 출시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즉시 떠오른 한 생각입니다.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스마트폰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1초 만에 연결해 깔끔한 디지털 음질을 즐기는 게 일상이 된 요즘이니까요.
90년생인 기자도 카세트 플레이어보다 CD 플레이어, MP3가 더 친숙합니다. 통신사인 KT가 야심차게 내놓은 '카세트'(KASSETTE)란 제품을 작동해보려 만졌을 때, 어느 방향으로 테이프를 끼워 넣어야 할지 몰라 잠시 버벅거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정도이니 2000년대생은 오죽할까요.
KT는 이런 소비자의 '감성'을 저격했습니다. 어린 시절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은 이들에겐 향수를, 생전 처음 만져보는 이들에겐 참신함을 전달한 거죠. 즉각적으로 기억이 떠오르게 하고, 세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덴 음악만 한 게 또 없잖아요.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유물'
카세트는 KT의 '레트로 프로젝트' 1탄 결과물입니다. 원래 올초 한정판으로 판매했는데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빠르게 품절되면서 아예 정식으로 출시했습니다. 가격은 12만1000원. KT 오프라인 직영점 일부와 온라인 'KT숍'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외관은 상당히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림직한)합니다. 앞면은 투명하고 옆면은 알루미늄 재질로 돼 있습니다. 작동을 위한 버튼은 윗면에 총 6개.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고급스럽단 인상을 줍니다. 하긴 저렴한 가격은 아니니까요.
'레트로 프로젝트'란 이름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레트로보단 작년부터 유행한 '뉴트로'(new+retro, 새롭게 즐기는 복고)가 맞겠죠. 카세트에는 블루투스 기능이 있거든요. 블루투스 기능이 카세트를 장식용으로만 쓰지 않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어요.
이 제품은 우선 블루투스 이어폰과 호환이 됩니다. 애플 '에어팟'이나 삼성 '버즈' 등 블루투스 이어폰 쓰는 사람은 다 알잖아요? 집에서도 유선 이어폰 안 쓰는 것.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기엔 카세트는 다소 무거운 편(274g)입니다. 집에서 가끔 듣더라도 블루투스 페어링이 되는 편이 무선 이어폰족에겐 좋죠.
블루투스 연결 과정이 간편하진 않았습니다. 카세트 어디에도 페어링 상태를 알려줄 모니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카세트 측면에 있는 블루투스 버튼을 누르면 푸른색 불빛이 깜빡이는데 이게 멈출 때까지 연결을 시도해야 합니다. 저는 설명서대로 한참 해보다가 사용하던 에어팟을 초기화한 뒤에 겨우 성공했네요.
깔끔한 음질은 기대하지 마세요. 기자는 음질에 예민하지 않은 소위 '막귀'인데요. 그런데도 1시간가량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보니 고음부에서 '우우웅'하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테이프가 '스스슥' 감기는 소리는 거슬리지 않는 정도로 들렸고요.
하지만 이게 '감성'이죠. 비오는 날 카페에서 룰라의 명곡(3! 4!) '여기 숨쉬는 이 시간은~'을 듣고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면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두 귀에는 에어팟 프로가 꽂혀있지만 투명한 카세트 속에서 테이프가 빙글빙글 감기고 있으니까요.
테이프를 받아든 10대, 20대 MZ세대는 어떨까요. 카세트와 함께 판매되는 테이프에 녹음된 음성을 들어보면, 아이돌 NCT 멤버 도영(25세)도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본 적 없다고 하네요. 아마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는 생경한 느낌으로 플레이어 작동법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MZ세대여, KT를 '인싸'로 여겨다오"
KT가 꼽은 카세트의 매력도 '세대 격차' 입니다. 좋은 의미로요. 카세트는 젊은 세대에겐 신선한 재미이고, 30대 이상에겐 추억입니다.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감성'이 제작 포인트라는 것이죠. 이걸 스토리 마케팅이라고 한답니다.
KT 레트로 프로젝트 담당자는 "어린 세대들 중 일부는 좋아하는 가수 앨범이 테이프로 나오는데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고, 반대로 오랫동안 써본 사람은 추억을 꺼내 보며 회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소비자 각자의 상황에 맞춰 개개인의 감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게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KT가 레트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노림수'도 여기 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건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MZ세대에게 '뭘 좀 아는 기업', '놀 줄 아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하네요. 하긴 통신사 KT는 지금까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약간 있었잖아요?
KT 담당자는 "미래 고객인 젊은 세대들에게 '인싸'(insider의 줄임말, 무리와 잘 어울려 놀고 유행에 앞서가는 사람)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게 목표"며 "고객이 원하는 '인싸템'(인싸+item)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레트로 프로젝트 자체도 젊은 KT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MZ세대들의 감성을 겨냥해 '새로움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하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감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카세트 플레이어와 내부 콘텐츠도 레트로 컨셉으로 기획했다고 하네요.
KT 레트로 시리즈는 카세트가 끝이 아닙니다. 1탄을 뛰어넘는 또 다른 신박한 제품이 나올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KT 담당자는 "두 번째 아이템도 계획 중이나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감성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아이템은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