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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알츠하이머]②치료제보다 중요한 것, 조기 진단

  • 2022.12.07(수) 15:50

치료제 없지만 '조기'에 진단하면 회복 가능
혈액·유전자·AI 진단 등 치매 진단 시장 성장세
2025년 3조원 전망…"정부 지원 필요" 지적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알츠하이머 치매(이하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은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꼽힌다. 아직 발병 원인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데다 임상 실패율이 99.6%에 달한다.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도 중도에 개발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잇단 실패에도 기업들은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 빅파마뿐만 아니라 바이오벤처도 새로운 플랫폼(기술)을 접목하거나 조기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치매 정복에 나섰다. 관련 치료제 개발 현황과 달라진 치료 접근법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세계적으로 아직 완벽한 치매 치료제는 없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18년 만에 알츠하이머 신약을 조건부 승인했지만, 이마저도 효능과 부작용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치매의 전 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하면 중증 치매로 진행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거나 치매의 원인을 찾는 진단기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조기 진단, 연간 2조 절감 기대"

7일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91만명,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약 19조원이다. 치매 환자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오는 2060년 약 43조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아직 근본적인 치매 치료제는 전무하다. 지난해 FDA가 승인한 첫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헬름'은 효능과 부작용 문제로 사실상 시장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이전까지 FDA가 승인한 4개 치료제도 모두 증상 완화제에 그친다. 발병 원인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치료제 개발이 난항을 겪으면서 치매 시장의 패러다임은 치료에서 예방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신경 세포가 손상돼 치료가 불가능한 치매와 달리,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10%는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치매 조기 진단이 활성화되면 연간 최대 2조8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문제는 기존 진단 기술의 한계와 높은 비용이다. 이제껏 치매 진단엔 의사의 임상 진단이 주로 활용됐다.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기억과 인지기능 장애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다만, 임상 진단의 경우 질병의 중증도가 의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또 경도인지장애는 겉으로 봤을 땐 건망증과 구분하기 어려워 진단이 쉽지 않다. 최근엔 양전자 단층촬영(PET) 등의 기술로 정밀 진단이 가능해졌지만, 비싼 검사 가격이 걸림돌로 꼽힌다. 1회 검사 비용만 120만~180만원에 달한다.

'피' 한 방울로 치매 검사…정확도·편의성↑

이에 따라 치매 진단 시장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높은 정확도, 편의성, 저렴한 가격 등을 앞세운 진단기기 개발에 나섰다. 진단 방법 역시 PET 같은 뇌 영상 분석에서 뇌척수액 진단, 혈액 진단, 인공지능(AI) 진단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 진단 기술을 치료제 개발에 활용하는 기업도 눈에 띈다. 바이오마커란 질병의 원인이나 진행 정도, 약물에 대한 반응 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척도다.

치매 진단기기 개발 기업 중 선두를 달리는 곳은 미국 C2N 다이어그노스틱스(이하 C2N)다. C2N은 혈액 채취만으로 알츠하이머의 핵심 발병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를 측정, 질병을 진단한다. 검사 절차가 복잡하고 가격이 비싸지만, 다른 진단기기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 중인 일라이릴리(이하 릴리)와 에자이도 각각 혈액 검사를 활용한 조기 진단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개발 중인 치료제는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투여해야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기 진단으로 약의 효과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국내 기업들도 진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진단 기업 피플바이오는 지난달 알츠하이머 혈액 검사 브랜드 '알츠온'을 출시했다. 혈액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얼마나 엉켜있는지를 측정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도를 평가하는 검사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알츠하이머 혈액 검사 진단키트 '인블러드 OA베타테스트'에 대해 의료기기 품목 허가를 획득한 바 있다. 올해부터 수탁 검사 기관과 종합병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피플바이오 측은 "기존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환자의 통증 유발·접근성·고비용 측면에서 사용에 제한이 있었다"면서 "간단한 혈액 채취로 검사자가 사전에 위험도를 파악하고 꾸준히 관리하도록 돕는 게 알츠온의 장점"이라고 했다.

AI 의료기기 기업은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AI로 분석해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데 주력한다. 뷰노, 딥노이드, 뉴로핏 등이 대표적이다. 뷰노의 '뷰노메드 딥브레인 AD'는 뇌 MRI를 100여개로 쪼갠 뒤 AI를 이용해 알츠하이머 진행 정도를 확인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진단기기 개발에 나선 뉴로핏도 AI 분석으로 뇌의 영역별 부피와 두께를 1㎜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메디프론과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을 접목해 치료제 개발까지 뛰어들었다. 특히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자체 발견 바이오마커로 진단과 치료제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계획이다.

'쑥쑥' 크는 치매 진단 시장…관건은

치매 진단 시장에 대한 전망은 밝다. 조기 진단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데다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어서다. 치매 치료제 시장이 열리면 이를 판별하기 위한 진단기기 수요도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바이오젠·에자이의 '레카네맙', 릴리의 '도나네맙' 등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한 점도 진단 시장 확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잉크우드리서치는 전 세계 치매 진단 시장 규모가 2020년 15억9800만달러(약 2조원)에서 2025년 19억8900만달러(약 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관건은 새로운 진단기기가 기존 진단법을 대체할 수 있을지다. 건강보험 급여 등재, 혈액 검사 대중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치매 진단 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치매 연구개발은 대부분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집중돼 있다. 치료제 시장이 진단기기 시장보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기 진단이 치료 효과를 높이는 건 물론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만큼 공공 기관의 적극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2020년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KDRC)을 출범, 치매 진단 기술과 치료제 개발에 오는 2028년까지 총 1987억원을 지원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진단기기 기업 관계자는 "아직 치료제가 없는 치매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외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많은 재원이 치매 치료제 개발에 쏠리는 상황"이라면서도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조기 진단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까지 줄일 수 있기에 어느 분야보다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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