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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왜 H&Q 손을 잡았나

  • 2023.06.17(토) 16:00

[워치인더스토리]
현정은 회장, H&Q서 3000억 자금 조달
H&Q, '백기사'로…고비 넘겼지만 숙제도

/그래픽=비즈워치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불안한 경영권

현대그룹에게 경영권 방어는 늘 당면 과제입니다. 한때 삼성그룹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그 규모나 명성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습니다. 주력 계열사들이 계열 분리하거나 매각되면서 전체적인 규모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현대그룹에게 남은 주력사는 현대엘리베이터 입니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도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물고 늘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다국적 승강기 업체 쉰들러(Schindler)입니다. 쉰들러와 현대그룹은 한때 한 배를 탔던 사이입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시숙부인 정상영 KCC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인수를 추진했을 당시 현대그룹을 도았던 곳이 쉰들러였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그래픽=비즈워치

당시만 해도 쉰들러의 속내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현대그룹도 쉰들러를 백기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인수가 무산되자 쉰들러는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한국 시장 진출을 노렸던 쉰들러는 본격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면서 한때 2대 주주에까지 오릅니다. 이를 토대로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인수 시도를 해왔습니다.

원래 현대그룹의 두 축은 현대상선(현 HMM)과 현대엘리베이터 였습니다. 해운 업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현대상선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현 회장은 그룹의 한 축인 현대상선 경영권 지키기에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한 축이었던 현대엘리베이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결국 매각됐고, 현대그룹은 그때 입었던 재무적인 타격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쉰들러의 짙은 그늘

변심한 쉰들러는 현 회장이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남아있던 현대엘리베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틈새를 찾아냈죠. 현 회장은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여러 금융회사와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장 실탄이 부족했던 현 회장과 현대그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운경기 악화로 현대상선의 주가는 고꾸라졌고 쉰들러는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쉰들러는 현 회장이 그룹에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 회장이 현대상선을 살리기 의해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들인 탓에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입니다. 쉰들러는 현재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긴 소송전 끝에 지난 4월 대법원은 현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미지=쉰들러 홈페이지

이에 현 회장은 가능한 모든 실탄을 끌어모았습니다. 만일 현 회장이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못하면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은 쉰들러에게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 회장은 보유하던 현대무벡스 주식은 물론 증권사 등을 통해 자금을 모았습니다. 이 탓에 현 회장 측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의 71.8%가 담보 등으로 묶이게 됐습니다.

현 회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했습니다. 20여 년에 걸친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확보 시도를 또 한 번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 주주로 남아있는 만큼 언제 또 어떤 시도를 할지 모릅니다. 

'백기사' H&Q의 등장

현 회장은 급하게 자금을 확보하면서 맺은 단기대출 상환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현 회장은 지난 4월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과 현대네트워크 지분을 담보로 M캐피탈과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현 회장은 M캐피탈과 연 12% 금리로 23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만기는 4개월입니다. 만기일은 오는 8월11일입니다. 

고민하던 현 회장과 현대그룹은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FI)를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 곳에 타진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에서는 검토는 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사진=H&Q코리아 홈페이지

이 상황에 국내 1세대 토종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가 나섰습니다. 업계 등에 따르면 현 회장 측은 H&Q로부터 약 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Q는 현대네트워크가 발행한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는 형태입니다. EB는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이 교환 대상입니다.

현 회장 측은 H&Q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M캐피탈에서 빌린 자금은 물론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M캐피탈에서 자금을 융통할 때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현 회장 측과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H&Q는 업계에서도 다른 PEF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왔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반적으로 PEF들은 인수·합병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후 기업 가치를 올려 재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습니다. 하지만 H&Q는 주로 재계의 우군으로 나서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줬습니다. 이를 통해 백기사 역할은 물론 초기 투자금 대비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전략을 펼쳐온 곳입니다.

실제로 H&Q는 지난 2008년 만도를 되찾고 싶었으나 자금이 부족했던 HL그룹의 백기사로 나서 만도(현 HL만도)를 HL그룹 품에 다시 안겨주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10년 하이마트 경영권 분쟁과 지난 2014년 녹십자가 일동제약 지분 매입에 나서면서 벌어졌던 일동제약 경영권 분쟁에서는 중재자로 나섰습니다. 이 모든 건에서 H&Q는 투자금 대비 2배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그런 만큼 현 회장 측은 다른 PEF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H&Q의 손을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현 회장 측이 H&Q와 맺은 이번 계약에는 현 회장 측이 정해진 기간 내에 CB와 EB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H&Q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는 조건이 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험 요소는 남아있는 셈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 회장 측은 H&Q의 조건이 그동안 여타 자금 조달 비용에 비해 낮은 점을 높이 산 것으로 알고 있다"며 "H&Q의 등장으로 현 회장 측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지만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방어에 대한 위험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것이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현 회장과 현대그룹이 앞으로 남은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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