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계와 금융시장, 정부까지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가까스로 살아난 한국 경제에 최대 변수로 떠오른 탓이다. 법원의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판단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막판 분수령으로 부상한 가운데 노조는 "파업 종료 전까지 추가 대화는 없다"며 강경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파업은 권리" vs "생산 차질 우려"…법원도 고심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노조 측은 최소 5만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오전 기준 집계된 참여 인원은 4만2000여명 수준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중앙노동위원회 중재로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중노위 조정안은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 기준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와 연봉 50% 상한을 유지하되,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 한해 영업이익 12%를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국내 영업이익 1위 달성을 전제로 한 조건부 지급안이었고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조합의 요구는 성과급 상한 폐지·투명화·제도화인데 조정안에는 이 중 어느 것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도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실적을 낸 경우에만 지급하는 일회성 안건"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전날 수원지법에서 열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2차 심문을 마친 뒤에도 "파업 종료 시까지 회사와의 추가 대화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어렵게 만든 사후조정이 노조의 결렬 선언으로 안타깝게도 무산됐다"며 "노조의 이런 결정은 회사는 물론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임직원과 주주, 국민들에게 큰 걱정과 불안을 끼치는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첫 번째 분수령은 '법원 판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6일 수원지법에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2개 노조를 상대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지난 2일 1차 심문에 이어 13일 2차 심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파업 예정일 전까지 결론을 낼 전망이다. 이르면 14일, 늦어도 20일 전후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총파업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회사 측 신청의 핵심은 '안전보호시설 정상 유지와 웨이퍼 변질 방지' 등이다. 관련 인력은 전체 조합원의 일부에 그친다. 법원이 파업 범위와 방식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나머지 조합원의 쟁의행위까지 모두 막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업 역시 노동자의 기본권인 만큼 법원이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폭넓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가처분 신청 배경과 구체적 내용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워 결과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법원도 노동권 보장과 생산 차질 우려 사이에서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민기업 멈출 수 없어"…정부 개입론 고조
두 번째 변수는 '정부의 긴급조정권'이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예외적 절차다. 발동되면 노조는 즉시 30일간 쟁의행위를 중단해야 하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중재 절차가 이어진다. 과거 발동 사례는 1969년 대한조선공사, 1993년 현대차, 2005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등 네 차례뿐이다.
정부도 우려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삼성전자 파업 가능성과 관련해 "파업은 절대 안 된다"며 원칙 있는 협상을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 경제·금융당국 수장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성장·수출·금융시장 전반에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실제 정부 내부에서는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한국 경제 회복의 핵심 동력이라는 판단이 강해지고 있다.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5%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KDI는 반도체 효과만으로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0.3%포인트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성장률 자체가 핵심 지표일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수출이 사실상 성장세를 떠받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 긴급조정권 카드까지 고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대통령실발 'AI 국민배당금' 논란으로 시장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까지 손 놓고 있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와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은 상당 부분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파업은 단순히 삼성전자 한 기업의 손실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 전반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긴급조정권을 단순 '파업 강제 중단 카드'로만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긴급조정은 결국 노사의 자율 교섭을 압박하고 타협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 성격이 강하다"며 "지금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서로 일정 부분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쓴 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실제 발동까지는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 특히 노동계와의 연대를 핵심 기반으로 삼아온 현 정부 입장에서는 긴급조정권 발동 자체가 노동 친화 기조와 충돌하는 장면으로 비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노위·사측 "다시 대화하자"…노조는 신중 모드
노조 내부 갈등도 변수다. 2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사측은 DX부문에 대해 어떠한 보상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DX부문 노동자들이 수긍할 정당한 보상안을 내놓으라"고 밝혔다.
이번 사후조정안이 DS부문에만 별도 보상 구조를 제시하면서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 사이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전삼노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업이 강행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 고객사 납기 지연,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 신뢰도 하락 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협력사 1700여곳의 연쇄 피해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파업 장기화 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감소 규모가 최대 40조원을 넘을 수 있다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도 삼성전자 파업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최근 대만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유시보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공급량이 3%만 줄어도 대만 업체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 민시뉴스도 주요 고객사가 대체 공급처를 찾을 경우 삼성전자의 시장 지위가 약화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막판 협상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이날 중노위는 삼성전자 노사에 오는 16일 사후조정 재개를 공식 요청했고 삼성전자 역시 노조에 별도 공문을 보내 추가 대화를 제안했다. 회사는 공문에서 "노사가 직접 대화를 나누자"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성과급 제도화와 투명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회사가 제대로 된 안건을 가져온다면 들어볼 생각은 있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