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나스닥에 입성한 SK하이닉스를 앞세워 "반도체는 더 이상 사이클 산업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판단이다. 미국 투자자들도 이에 화답했다.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나스닥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13% 넘게 오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화려한 신고식
1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한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보다 14% 높은 170달러에 출발해 장중 177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지만 168.49달러로 거래를 마치며 첫날 13.1% 상승했다.
ADR 종가를 기준으로 환산한 국내 본주 가격은 약 252만8000원이다. 전날 한국거래소 종가(218만원)보다 약 16% 높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조정을 받았던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번 ADR 공모 규모는 265억달러(약 40조원)다.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이며 미국 기업을 포함해도 최근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다. 국내 본주보다 약 3% 높은 가격에 공모하는 '프리미엄 프라이싱'에도 성공했다. AI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력과 성장성을 미국 투자자들이 높게 평가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이날 뉴욕 나스닥 본사에서 열린 오프닝벨 행사와 이후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 CNBC 인터뷰에서 AI 시대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확실한 구조적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며 "예전처럼 공급 과잉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이제 겨우 4~5살 어린아이 수준"이라며 "범용인공지능(AGI)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데이터 학습이 필요하다. 어떤 압축·저장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메모리 성장세를 막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AI는 아직 5살"
AI 거품론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AI 시대에는 메모리 칩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빅테크 고객사들이 요구하는 물량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지만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긴 시간이 필요해 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내 추가 생산시설 투자 가능성도 열어뒀다. 현재 추진 중인 인디애나주 투자 외에도 적절한 입지가 확보되면 추가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은 AI 혁신의 중심지이자 고객·파트너·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라며 "이번 상장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고객들과 더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5년 전 D램 불황으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회사가 HBM 투자와 혁신을 통해 AI 메모리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며 "고객들의 신뢰를 행동으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40조원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과 청주 P&T7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 극자외선(EUV) 장비 확보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AI 메모리 공급 확대를 위한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나스닥 상장이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다시 평가받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생태계의 중심인 미국 시장에서 투자자 기반을 넓히고 HBM 선도기업으로서 위상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다만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얼마나 장기화할지, 대규모 설비 투자가 지속적인 수익성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검증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