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보다 미장'을 외쳤던 서학개미들이 변심했다. 국내투자자들이 1년 3개월 만에 해외주식에 대해 순매도로 전환한 모습이다. 서머랠리와 달러/원 환율 상승으로 수익률을 회복한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매도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는 하락장에 베팅하는 상품을 대거 담았다.
전문가들은 시장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전반적인 해외주식 시장에서 '팔자'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1년 3개월만에 순매도 전환
5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투자자들은 지난달 해외주식을 6억2607만달러 어치를 순매도했다. 줄곧 순매수 추이를 보이던 해외주식 거래가 순매도로 돌아선건 작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이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만 5억7154만 달러 규모를 순매도했다. 지난달 3억6800억달러 팔아치운데 이어 2개월째 매도 거래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 미국주식 순매수 규모는 올해 2월 30억달러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6월이 되자 4억달러 수준으로 축소됐고, 7월부터 순매도로 돌아서 버렸다.
이는 최근 주가 랠리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로 파악된다. 나스닥종합지수는 지난 6월 1만1000선까지 떨어졌다가 8월 중 1만3000선 재돌파에 성공했다.
특히 잭슨홀 미팅을 기점으로 매도 물량이 쏟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연사로 나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인상 강행 의지를 보이자, 시장에선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향후 증시에 하방압력이 가해질 것이란 우려가 확산됐다.
교보증권 글로벌브로커리지(GBK)부 관계자는 "금리를 급하게 올리면 시장 자금이 먼저 회수되기 때문에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매도에 나섰다"며 "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기관의 경우, 정확한 집계는 안되지만 벤치마크인 지수 자체가 떨어지다보니 마찬가지로 매도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달러값도 차익실현 욕구를 자극했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달 8일 1300원대에 진입한 후 연일 연고점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같은 강달러 기조로 투자자 주머니 속 해외주식의 원화환산 가치도 덩달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원 환율 상승은 기존 투자자의 매도를 유인한 한편, 신규 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높여 매수 수요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8월 한달간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등 성장주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웠다. 또한 누적 매수해온 프로세어즈 울트라프로QQQ ETF(TQQQ),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QQQ ETF(SQQQ)를 비롯해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SHS ETF(SOXL),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베어 3X ETF(SOXS) 등도 매도 대상이 됐다.
성장주 팔고 SQQQ 산 서학개미...당분간 매도세 계속
일부 서학개미는 주식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하락장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대거 사들였다. 순매수 결제 금액 순위를 살펴보면 8월 한달동안 국내 투자자들은 나스닥 100지수를 거꾸로 3배 추종하는 SQQQ를 7859만달러 어치 담았다. 8월중 가장 순매수 규모가 많다. ICE 반도체 지수 수익률을 반대로 3배 추종하는 SOXS 또한 2727만달러 가량 사들였다.
같은 기간 만기가 20년 이상인 채권에 투자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만기 국채 불 3X SHS ETF(TMF)에 대해선 7328만달러 규모 순매수했다. 밈 주식으로 유명세를 탄 AMC엔터테인먼트도 4781만달러 어치 사들였다.
증권가에선 해외주식 매도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교보증권 GBK부 관계자는 "당분간 매도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인플레이션 고점이 확인되고 금리를 더 올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고 3분기 실적 등을 확인해본 다음 투자 자금이 다시 유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당장은 매수 타이밍이 아니지만 내년 초 1월 효과를 노린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내년 하반기 경기침체가 온다고 가정하면 내년 3월 주가가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주가 흐름과 연초 배당을 고려해 연말부터 우량한 고배당주를 분할매수할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