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지분 매입 직후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주주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큰손' 국민연금의 워치리스트에 오를지 이목이 쏠린다.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1년 안에 지적받은 사안을 개선해야 한다. 이후에도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주주제안을 받을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달 내 회의를 열고 중점관리사안에 해당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우려가 제기된 기업들을 선정하는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수책위는 주주총회가 몰려있는 3월을 제외하고 매달 회의를 열어 비공개대화 대상기업 선정 및 후속조치를 다룬다.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 가운데 기업가치 또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으면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선정하고 서한, 면담 등을 통해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책임투자 활동의 일환으로 단순 의결권 행사보다 적극적인 주주활동이다.
수책위가 비공개 대화기업을 선정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선정한 중점관리사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우려가 있는 기업들이다. △비합리적 배당정책를 수립한 경우 △임원 보수한도를 경영성과와 연계하지 않은 경우 △횡령·배임이나 경영진 사익편취에 해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기금이 반대 의결권을 계속 행사했음에도 개선이 없는 경우 △기후변화 관련 위험관리가 필요한 경우 △산업안전 관련 위험관리가 필요한 경우 등 6가지가 중점관리사안이다.
중점관리사안 외에도 예상치 못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이슈가 발생해 기업가치 내지 주주권익 훼손 우려가 발생한 경우도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다. 수책위는 이슈가 중대한지 평가한 다음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올릴지 의결하는 절차를 밟는다. 선정 이후 1년 간 대화를 진행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돌입한다.
예를 들어 2023년 수탁자책임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수책위는 근로자 사망 사고에 책임이 있는 모 기업을 비공개대화 기업으로 선정해 이사회, 경영진 등과 산업안전과 관련해 비공개대화를 진행한 바있다.
이번 회의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공개대화 기업으로 지정하는 안건이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승계 지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 상당의 주주배정 방식 유증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유증 발표 직전인 2월 한화에너지, 한화에너지 싱가포르법인, 한화임팩트파트너스 등 계열사 3곳로부터 한화오션의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승계작업과 유증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인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총수일가 지분정리에 현금을 소진한 뒤 정작 사업 추진에선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같은 논란 속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고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이후 회사는 유증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대폭 줄이는 대신 1조3000억원을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파트너스·한화에너지 싱가포르법인으로부터 조달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금감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전히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 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30일 다시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금감원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수책위는 회사가 신고서에 담은 내용을 포함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도 있고 금감원 신고서에도 문제가 있어보여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접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작년 말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분을 7.16%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유증 발표 직후 60만원대로 고꾸라졌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회복한 상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방산 테마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지난 7일 89만9000원까지 치솟았다. 이때 시가총액은 50조5217억원을 기록하며 현대차의 시총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는 상승분을 일부 내어주며 80만원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선정되더라도 당직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금을 쌓아두느라 자기자본수익률(ROE)이 너무 낮거나 지배구조 문제가 컸던 기업이라면 주가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거버넌스 이슈보다는 수주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