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입법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공언한 상법 개정안이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일반주주 보호 정책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시장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특히 '3%룰'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서 감사위원회 독립성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확대가 이번 개정안에 빠진 것에 대해선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수주주가 추천한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가능케 하는 핵심 제도임에도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추후 논의로 미뤄졌다.

국회 통과한 상법 개정안, 어떤 효과?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2~3주 내 처리하겠다고 밝힌 법안으로 여당이 속도를 내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상법 개정에 반대해온 국민의힘도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입법이 현실화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일반주주로 확대한 것이다. 현행 상법 제382조는 이사가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개정안은 여기에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회사뿐 아니라 일반주주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해당 조항(상법 382조의 3항)은 법안 공포후 즉시 시행한다. 시장에선 이 조항이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행위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열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불공정한 합병비율 산정,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등 지배주주에게는 유리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은 침해하는 이사회의 결의사항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며 "이제 소액·다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의 책임이 명확해진다"고 밝혔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이슈가 두드러졌던 지주회사는 특히 영향 많이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계열회사간 분할·합병 등 지배구조 변화 시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의사결정은 향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상장사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합산 3%룰'을 확대 적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존에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우회 선임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사조오양 사례처럼 계열사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의 꼼수가 발생했다.
개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외이사 감사위원에게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도록 했다. 이 조항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주주총회 시즌부터 본격 적용한다.
시장에선 이번 조치로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연대가 추천한 감사위원 후보가 이사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엄 연구원은 "개별 3%룰은 기업이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며 "합산 3%룰의 적용 범위 확대와 후속 입법으로 도입될 예정인 분리선임 감사위원 수 증대는 종전 규제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빠진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추후 입법 과제로
한편 소액주주 권익 보호의 핵심으로 꼽혀온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2인 이상 분리선출 의무화는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여야는 두 제도에 대해서 추가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병기 민주당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공청회를 열어서 의견을 수렴한 후에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방식이다. 소액주주의 실질적인 이사 선임 참여를 위한 대표적 제도지만, 현재는 강행규정이 아니어서 회사가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는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안을 발의한 바있다.
또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 현재는 1명만 분리해 선출하면 되지만, 민주당은 이를 2명 이상 또는 전원 분리선출로 확대하자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 이후에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소액주주가 이사 선임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며 "다만, 집중투표제 무력화를 방지하기 위해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집중투표제만 도입했을 경우 이사들의 임기를 각기 다르게 설정하고 매년 1명의 이사만 교체하도록 하는 꼼수가 가능하다. 따라서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 수를 늘려 소액주주의 견제 수단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장에선 이번 개정 외에도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후속 입법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상속·증여세 완화 △자사주 의무소각 등이 거론된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향후 공청회 등을 거쳐 입법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으며, 상법 외에도 배당소득세, 상속세 개정,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세법 및 기타 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이 측면에서 상법 관련주들의 주가 하락 시에는 오히려 매수 기회로 판단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