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알뜰폰(MVNO)' 가입자가 지난 1월 기준으로 69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6152만명) 가운데 11%, 즉 10명 가운데 한명은 알뜰폰을 쓰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지난 2011년 첫선을 보인 이후 6년 만에 '가입자 700만' 시대를 앞둘 정도로 외형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알뜰폰은 정부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대형 통신사 네트워크를 도매로 빌려 일반 소비자에게 싸게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통신 품질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통신요금을 책정할 수 있는데요. 국내 이동전화 시장이 포화 상황임에도 알뜰폰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통신비 절감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입니다.
◇ 통신 알뜰폰 자회사, 재미 못봐
그렇다면 알뜰폰 업체들은 시장 확대로 인한 수확의 '과실'을 누리고 있을까요. 예상과 달리 대다수가 이렇다할 재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계열 알뜰폰 자회사는 지난해 알뜰폰 사업으로 적자를 냈습니다.
이들 통신사는 자사 망을 다른 알뜰폰 사업자에 임대해 주는 것 외에도 자회사를 통해 직접 알뜰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자회사 실적이 하나같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업체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LG유플러스 자회사이자 '유모비'란 브랜드를 쓰고 있는 미디어로그는 지난해 11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전년 147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적자가 이어진 것입니다. 이 기간 매출은 2240억원으로 전년(2303억원)보다 60억원 가량 줄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미디어로그(옛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는 인터넷통신서비스와 멀티미디어콘텐츠 제작 등을 하다가 2012년 5월 지금의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2014년부터 알뜰폰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모회사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빌려 일반 요금보다 20~30% 저렴한 서비스 가격을 내세우며 이용자 확보에 나섰습니다. 미디어로그는 초기 공격적인 마케팅과 모회사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서비스 석달만에 6만명 가량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다만 뚜렷한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사업 첫해 17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작년까지 3년째 적자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적자폭은 매년 줄어들긴 하나 매출 성장세가 작년부터 꺾이는 등 전체적으로 가라앉는 분위기입니다.
KT의 알뜰폰 자회사 KT엠모바일도 비슷합니다. 지난해 400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2015년 367억원의 순손실에 이어 적자폭이 확대됐습니다. 이 기간 매출은 1120억원으로 전년(424억원)에 비해 3배 가량 늘었으나 적자폭도 커진 것입니다.
KT엠모바일은 KT가 알뜰폰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위해 2015년 자본금 1000억원(액면가 5000원*발행주식 2000만주)을 들여 세운 곳입니다. 설립 직후 KT 그룹 계열사인 케이티스(KTIS)로부터 알뜰폰 사업 영업권을 넘겨 받았고 지난해에는 KT가 추가로 1000억원을 출자하는 등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실적으로 화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상위 업체들 대부분 적자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링크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SK텔링크는 지난해 616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전년(558억원)보다 10% 늘어난 것인데요. 매출은 전년(4314억원)보다 6% 줄어든 4069억원에 그쳤으나 흑자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알뜰폰 사업만 놓고 보면 지난해까지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텔링크는 알뜰폰 외에도 국제전화 '00700', 기업을 대상(B2B)으로 한 통신 서비스 등 3개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알뜰폰 부문에선 적자가 이어졌으나 적자폭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형 통신사 계열들이 알뜰폰으로 하나같이 '죽을 쑤고' 있는 지경인데, 다른 중소업체들이야 오죽할까요. 가입자 기준 상위 업체인 CJ헬로비전(작년말 기준 85만명)은 최근 수년간 알뜰폰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다 2015년에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지난해까지 흑자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 40여개 업체, 출혈 경쟁 '레드오션'
현재 알뜰폰 사업자로는 케이블TV 업체인 CJ헬로비전, 한국케이블텔레콤을 비롯해 중소 통신사인 세종텔레콤 등 무려 40여개에 달합니다. 이들 업체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요금 할인과 프로모션을 내걸고 있는데요. 기존 통신비의 '반값'에 불과한 수준으로 요금제를 설계해 가입자를 끌어모으는 곳도 많습니다.
출혈 경쟁이 이어지면서 수익을 내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덩치가 작은 영세 업체는 적자 누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리는 있는데요.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검붉어지고 있음에도 통신 자회사들은 적자를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버틸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 경쟁력이 떨어지는 영세 업체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면 메이저 업체들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인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입니다.
원래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3사가 자회사를 통해 알뜰폰에 진출한 것은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자회사를 매개로 알뜰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다른 사업자로의 가입자 이탈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알뜰폰 정책만으로 통신 과점현상으로 인한, 경쟁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서는 제4이동통신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데, 수조원에 달하는 재무투자를 감당한 회사가 나서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 입니다. 통신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선 묘수가 없는 셈이지요. 그러는 사이 오늘도 알뜰폰 회사의 적자는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