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업계가 위기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정책으로 이동통신사 요금이 떨어지자 알뜰폰 경쟁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기업 계열 알뜰폰 회사와 중소 알뜰폰 회사는 입장 차이가 있다. 대기업 계열 알뜰폰 회사는 알뜰폰 사업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다른 사업목표가 있다면 끌고 갈 저력이 있다. 반면 중소 알뜰폰 회사는 적자가 지속되면 문을 닫아야 한다.
때문에 알뜰폰 위기 속에서도 대기업 계열과 중소 사업자간 내부 갈등이 벌어진다.
◇ 출혈경쟁 언제까지
'알뜰폰은 싸다'는 인식은 정책도입 6년 만에 전체 이동통신시장점유율 11.7%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에 비해 경쟁력 있는 저가 요금제로 전체 가계통신비를 인하했다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지난 7월 처음으로 가입자 이탈 현상이 발생하고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사실상 위기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기감을 느낀 알뜰폰 업계는 저마다의 해법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이다. 2만원대 10GB 데이터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거나, 아예 알뜰폰 색채를 지우기 위해 브랜드명을 변경하기도 한다. 오히려 알뜰폰을 강조하기 위해 알뜰이라는 이름을 브랜드명에 새로 넣은 업체도 있다.
SK텔링크는 최근 브랜드명에서 알뜰폰이라는 명칭을 삭제했다. 회사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자들도 위기감이 있다는 건 공감한다"며 "그래서 어떤 업체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고 다른 곳은 이름을 바꾸는 등 저마다의 해법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뜰폰의 유일한 경쟁력이 저가 요금제인 만큼 여전히 최대한 요금을 내려 가입자를 끌어 모으는 경쟁도 지속되고 있다.
CJ헬로비전이 운영하는 헬로모바일은 지난 8월 데이터 10GB를 월 2만원대에 제공하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놨다. '진짜 보편요금제'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정부의 보편요금제 정책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중소 알뜰폰 업체 사이에서는 시장파괴적 요금제라고 지적한다.
중소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헬로모바일 요금제는 알뜰폰 수익구조를 봤을 때 나올 수 없는 요금제"라며 "대기업 알뜰폰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놔도 버틸 재간이 있지만 중·소 업체들은 사실상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카드회사와의 프로모션, 마케팅 비용 등을 줄여 소비자 혜택을 최대한 넓힌 요금제"라며 "일부 출혈경쟁 등 오해가 있는 상황이지만 꾸준히 판매할 가능성이 높은 요금제" 라고 설명했다.
◇ 정부, 알뜰폰 지원 계속
요금경쟁이 심화되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결국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도매대가 인하나 전파사용료 감면 등 정부 정책에 목을 매는 상황이 더 강해졌다.
정부의 기조 역시 알뜰폰에 대한 지원 정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대표적 정책이 전파사용료 감면과 도매대가 인하다.
전파사용료 감면은 알뜰폰이 등장했던 2011년부터 적용됐다. 1년 단위로 감면을 연장했는데 사실상 알뜰폰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전파 관리에 필요한 경비를 정부에 지급하는 것이 전파사용료인데 알뜰폰 지원 차원에서 감면해 온 것이다.
도매대가 인하 역시 알뜰폰의 수익창출 경로다. 알뜰폰은 이통3사로부터 망을 임대해 사업하는 만큼 고정적으로 도매대가를 지출한다. 당연히 이에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도매대가는 매년 상반기 도매제공 의무사업자인 SK텔레콤과 정부가 협상해 도매대가 수준을 결정한다. 망 임대에 따른 대가가 낮아질수록 알뜰폰의 수익성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알뜰폰 지원방안으로 전파사용료 감면과 도매대가 인하 두 가지 정책이 주로 나온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도매대가 인하, 전파사용료 감면 등은 알뜰폰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 지원하고 있는 정책들"이라며 "정부는 알뜰폰을 대변하는 입장에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 도매대가 인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제는 경쟁력 스스로 찾아야
알뜰폰 업계의 어려움은 공감하지만 정부가 언제까지 알뜰폰 사업자 지원정책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한계론도 나온다.
황성욱 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은 "알뜰폰 업체도 계속 정부 지원정책에 의존해서 사업하고 싶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원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송재성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도 "알뜰폰이 중장기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정부의 몫도 있지만 알뜰폰 사업자의 몫도 있다"며 "정부 지원 없어도 알뜰폰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알뜰폰 내부에서도 더 이상 저렴한 요금제로만 승부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기업 자회사와 중·소 알뜰폰 업체를 가리지 않는다.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해외 알뜰폰도 초기에는 저가 요금제로 경쟁했지만 출혈경쟁에 내몰리면 사업자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요금제 이외의 새로운 서비스를 찾아 점프업을 한다"고 말했다.
미국 알뜰폰 사업자인 트랙폰(TracFone)은 미국 내 노동자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히스패닉 계층을 주 고객으로 삼아 전략 마케팅을 벌여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일본 알뜰폰 사업자들은 통신서비스를 전용으로 다루는 전문 판매점 증·신설에 나서고 있다. 알뜰폰의 경우 구매처가 다양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가입자를 확대하자는 전략이다. 도심 번화가와 지하철역 앞 등에 판매점을 만들어 고객들이 쉽게 알뜰폰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대기업 자회사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알뜰폰도 이제는 요금제 경쟁 대신 서비스, 가치, 고객 혜택 중심으로 경쟁 프레임을 바꿔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중·소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사물인터넷(IoT) 시장 등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며 "시장이 열린다면 유선 인터넷 사업 등 홈(Home)사업에도 뛰어들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