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거의 한달을 끌어온 '통신 기본료 폐지' 논의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일단락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이하 국정위)가 전날(19일) 미래창조과학부의 네번째 업무보고를 받은 이후 "기본료 폐지는 통신사 협조가 필요한 문제"라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기본료 폐지 결사 반대 입장인 통신사에 공을 넘긴 것이니 사실상 이 사안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본료 폐지 논의가 싱겁게 끝나면서 폐지를 원했던 국민 상당수를 비롯해 시민단체 등은 힘이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대가 큰 사안이었으나 허망하게 끝났기 때문이죠.
통신요금 인하안은 민생과 바로 연결된 사안이라 역대 정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는데요. 돌이켜 보면 이번처럼 논의 자체가 꽤 긴 시간 동안 국민적 관심사로 다뤄진 적이 없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국정위는 미래부를 불러 업무보고를 받았습니다. 네차례에 걸쳐 진행한 보고 과정에서 통신비 정책을 담당하는 국정위의 한 위원은 미래부가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며 다그쳤습니다.
미래부가 가져온 인하안이 흡족하지 않다며 돌려 보낸다거나 업무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다루듯 시한을 정해놓고 방안을 가져오라 독촉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기에 시민단체와 정당, 국회의원, 알뜰폰 업체 등이 내는 제각각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스펙타클 영화처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는데요. 이 내용이 적나라하게 뉴스를 타고 중계되면서 여론의 관심을 증폭시켰습니다.
어느 사안이나 구경꾼이 잔뜩 몰리면 당사자는 흥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통신 기본료 폐지안은 현행법상 근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위가 완장찬 점령군처럼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통신사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법적근거가 없는 민간기업의 요금 인하를 일방통행식으로 밀어 붙이려는 행보에 여당에서조차 우려의 입장을 전달할 정도였습니다.
이러다보니 대화를 통한 이상적인 합의안은 커녕 절충점을 찾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통신사로서는 가뜩이나 민감한 통신비 문제를 국정위가 도마에 올려놓고 밀어부치려 하니 타협하기 어려워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역대 정권에선 통신사와 물밑 접촉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발표함으로써 마무리됐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마녀사냥하듯 다루니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무엇보다 통신사들은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통신사에 요금 인하 요구는 금전적 손실 외에도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협상의 빌미를 주게 됩니다.
이로 인해 통신사들은 요금 인하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러한 모습이 새 정부에 반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나아가서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범죄 집단 취급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통신업체 관계자는 "해외 여행을 다녀보면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가 앞서고 있다는 것을 쉽게 체감할 것"이라며 "이는 국내 통신업계가 발빠른 차세대 망 투자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마치 통신사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악덕 기업으로 비춰지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위는 이번 4차 보고를 끝으로 공식적인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인데요. 말 많은 기본료 폐지 논의는 요금할인율 인상 등 우회적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 업무보고는 의미있는 진전보다 업계에 생채기만 남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