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수년째 진행 중인 국산 보툴리눔 톡신 소송 이야기다. 최근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미국에서 진행 중이던 국산 보툴리눔 톡신 소송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는 대웅제약에 21개월간 나보타의 미국 내 수입금지를 최종 결정했다.
앞서 ITC는 지난 7월 예비판정에서 ‘나보타’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로 10년의 수입금지, 공정기술에 대한 침해로 21개월의 수입금지 결정을 내렸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이의신청을 제기, 재심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영업비밀 침해, 즉 균주 도용 의혹은 무혐의로 결정되면서 10년간의 수입금지 처분은 취소됐다. 이번 ITC의 최종결정은 60일 이내에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효력이 발생한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ITC 최종결정에 각자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21개월의 수입금지 결정으로 ‘공정기술 침해’가 인정돼 결과적으로 승리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논쟁의 가장 핵심이었던 ‘도용’ 여부가 무혐의로 난 점을 내세워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양사는 ITC의 심사결과나 예비결정 때마다 유리한 측면만을 내세워 승리를 주장해왔다. 최종결정이 났지만 여전히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다.[관련 기사: 끝없는 '보톡스 전쟁'…포자 분석방식 두고 연장전]
사실 이번 판결을 짚어보면 양사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들이 쏟아지면서 메디톡스는 균주 유출 및 도용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메디톡스가 경쟁사들의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다 메디톡스의 연구원이 대웅제약으로 이직하는 등의 정황이 포착되면서 대웅제약이 ‘균주 유출’의 주요 타깃이 됐다.
또 메디톡스에게는 원조 보톡스 회사인 앨러간과 미국 수출계약을 맺으면서 미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던 ‘나보타’가 가장 위협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메디톡스는 ITC에서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막는 것이 1차 목표였던 셈이었고 결국 이를 이뤘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주장해온 ‘도용’ 의혹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승리를 외치고 있다. 초기 메디톡스의 주장은 국내사들의 균주가 자사 균주라는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균주 ‘공정기술 침해’에 대한 의혹은 ITC 소송에서 추가로 제기한 문제다. 대웅제약 역시 핵심 사안인 ‘도용’에서는 ‘무혐의’를 받아 일부 승리한 것이 맞다. 다만 미국 진출에 사활을 걸어온 대웅제약으로서는 21개월의 수입금지 조치는 큰 타격이다. 대웅제약 입장에서는 '이겼지만 진 싸움'인 셈이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웅제약은 연방법원에 항소를 계획 중이다. 국산 보툴리눔톡신 전쟁은 또다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균주 '공정기술 침해'에 대한 다툼의 결과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나뉜다. 소송에서의 승패는 분명해지겠지만 이미 여론은 싸늘하다.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소송비용과 시간을 소모하고 국산 보툴리눔톡신의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되던 상처뿐인 영광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