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연속 현금배당"
"주가안정 위해 자사주 매입"
국내 중견 제약사들이 적자배당과 자사주 매입 정책을 발표하면서 내건 문구다. 일견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제 살을 깎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배당금의 대부분은 오너일가로 돌아가고 자사주는 소각없이 대주주의 우호지분 역할을 한다. 사실상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6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독은 올해 3분기까지 별도 기준으로 51억9622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가 그간 한독과 공동 판매하던 두 희귀의약품 제품(솔리리스, 울토미리스)의 판권을 회수한 영향이 컸다.
매출공백을 메울 마땅한 대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독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비 증가 등으로 재무지표는 악화하고 있다. 3분기 부채비율은 130.1%로 전년 동기 대비 12.97%포인트 증가했다.
한독은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배당을 건너뛴 적이 없다.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도 마찬가지로 41억원 규모의 배당을 시행했다. 올해도 배당 가능성이 커보인다.
가장 큰 수혜자는 지분 약 40%를 보유한 고 김신권 창업주의 장남인 김영진 회장과 친인척으로 구성된 오너일가다. 그 중 지분 17.6%를 보유한 1대주주 와이앤에스인터내셔날은 오너일가 장손인 김동한 한독 기획조정실 전무가 최대주주인 회사다.
오너일가 지분이 30%에 달하는 유유제약은 올해 흑자전환에 따라 고배당을 시행할 것이란 기대감에 3일 우선주 두 종목(유유제약1우, 유유제약2우B)의 주가가 나란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유유제약은 누적 당기순이익 78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유유제약은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으로 적자배당을 시행한 적이 있다. 이보다 앞서 2020년에는 순이익(2990만원)의 60배가 넘는 18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그해 유유제약의 배당성향은 6172.8%로 코스피 1위에 등극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지만 소각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중견 제약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매입한 자사주가 사실상 오너일가의 우호지분 역할을 하면서 주주환원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약품은 지난 20여 년간 주가안정이란 명목을 내걸고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고 있으나 소각을 한 적이 없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586만4302주(22.4%)에 달한다.
삼진제약도 지난달 자사주 26만3405주(1.9%)를 매입했다. 주가안정과 주주가치 제고 때문이라고 매입배경을 밝혔으나 1997년 첫 자사주 매입 이후 이를 소각한 적은 없다. 이달 2일 기준 삼진제약이 보유한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총수에서 11.7%를 차지한다.
두 중견 제약사의 공통점은 공격적인 배당정책을 펴는 한독, 유유제약과 비교해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낮다는 것이다. 현대약품의 경우 이한구 회장과 아들 이상준 대표의 합산 지분율이 22.1%에 그친다. 하지만 여기에 보유한 자기주식을 더하면 이 비율은 44%로 뛴다.
한영도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주가가 심각하게 저평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자배당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의사결정 결과로 보기 어렵다"며 "자사주를 오너일가의 우호지분으로 활용하기 위해 소각 없이 매입만 하는 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제고와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