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 대한 위인설법도 안 되지만 특정 회사에 대한 위인설법도 안된다. 오해받을 필요가 없다."(김종민 의원)
국회에서 '위인설법'(특정인을 위해서 없는 법을 만들어 내는 것) 논란이 벌어졌다. 특정 회사는 고려아연을 뜻하고, 법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위인설법 논란이 난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지난달 28일 국회(정기회) 제10차 전체회의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겼다.
국회 산자위가 의결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각각 대표발의한 12개의 개정안을 하나로 통합한 위원회 대안이다. 이 가운데 김종민 의원이 '위인설법'이란 단어까지 꺼내들며 지적한 법안은 국민의힘 소속 이철규 산자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다.
법안 발의 부터 법사위까지 단 15일...소위원회에선 검토시간 '1분미만'
해당 법안은 지난달 8일 이철규 위원장이 발의했다. 이후 21일 소위원회를 단 한번에 통과해, 28일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현재 법사위에 올라가 있다. 일수로는 21일, 영업일 기준으로단 15일이 걸린 보기드문 초고속 처리다.
이처럼 빠른 처리속도는 법안 발의자이기도 한 이철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산자위원장)이 국회법(제58조제4항)에 따라 소위원회에 직접 회부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건에 대한 위원회 상정, 제안설명, 심사 및 찬반토론 과정없이 소위원회에 부쳐졌다. 산자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당연히 없었다.
일사천리로 속도를 내던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처음으로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김종민 의원은 우선 법안 통과가 너무 빠르다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김종민 의원은 "11월 8일 발의를 해서 한 달 만에 통과되는 건데 이것은 일반적인 입법 절차에 이탈하는 것"이라며 "발의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쟁점있는 법안을 한 달 만에 통과시키는 상임위가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소위원회에서 (법안과 관련한) 토론이 진행되지 않았다. 찬반 토론이 있어야 한다"라며 "법을 이렇게 졸속으로 통과시키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도 "하루 이틀 더 빨리 통과시킨다고 대단한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겠나"라며 "토론하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이에 법안 발의자인 이철규 산자위원장은 "소위원회에서 토론이 충분히 진행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열린 산자위 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박희석 산자위 수석전문위원의 간략한 설명과 정인교 산업통산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동의 발언 등을 합쳐 1분이 채 되지 않는 검토만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해외 M&A시 정부가 국민경제 파급효과 검토"...포괄위임 금지 해당 지적
이처럼 일부 의원들로부터 졸속 처리 지적을 받은 이철규 산자위원장의 법안은 산업기술보호법 가운데 '11조의2 4항'을 수정하는 내용이다.
현재 해당 조항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회사의 해외 인수·합병시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중앙행정기관(산업통상자원부)의 장과 협의한 후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철규 산자위원장은 해당 문구를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검토해 승인할 수 있도록 고치려는 것이다.
법안 졸속처리를 지적한 김종민 의원은 개정안의 문구인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해석이 모호하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다. 그는 "국가안보란 개념은 명확하지만, 국민경제 파급효과는 고용, 수출 등 다양한 영향이 있어 포괄위임 금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김종민 의원의 이러한 의견에 대해 발의자인 이철규 산자위원장은 모든 사항을 입법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구체적인 개념을 정부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러자 김종민 의원은 "구체적인 사항을 위임해야지, '구체적인 것은 정부(시행령)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위헌"이라고 맞섰다.
김 의원은 또 "세계적인 입법례를 봐도 국가안보나 기술안보에 대한 승인 조항은 대부분 있지만 '국민경제 파급효과'를 가지고 정부가 승인한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보수, 진보를 떠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인투자를 정부 승인하에 놓이게 하는 것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과거 국회에서도 산업기술보호법을 다룰 때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국민경제 파급효과를 빼고 만들었던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수출에 대해서는 경제 파급효과를 고려하지만, 외국인의 투자 행위를 정부가 승인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자유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실제 산업기술보호법 제11조2항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외국기업에 기술을 수출하고자 할 때는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검토해 승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의 M&A를 다루는 제11조의2 4항에서는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만 검토한다고 적혀있다.
이처럼 해당 법안에 대한 이견이 나오는 과정에서 김종민 의원은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에 경영권 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하면서 '위인설법'을 거론했고,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거듭 언급했다.
최근 고려아연은 MBK가 외국인 투자자로 고려아연 M&A의 자격이 없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외국 국적이며, 투자심의원회 의장으로 모든 투자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경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MBK 측은 고려아연의 인수 주체는 국내법인(MBK파트너스 유한책임회사)이며, 해당 법인의 최대주주는 한국국적의 윤종하·김광일 부회장(의결권 기준 59%)이라고 반박했다. 또 투자심의위원회는 김병주 회장을 포함해 11인의 파트너들(내국인 7명, 외국인 4명)로 구성된다는 점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