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출 기준 5대 제약사(유한양행·녹십자·종근당·한미약품·대웅제약) 중 지난해 현금성자산 규모가 3000억원이 넘는 곳은 유한양행과 종근당 두 곳으로 나타났다. 두 회사는 넉넉한 현금을 토대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적 혁신) 전략의 신약 R&D(연구개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GC녹십자는 혈액제제 '알리글로'의 미국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입금이 크게 불어나면서 형편이 빠듯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잇단 순손실을 내고 있어 다른 메이저 제약사들에 비해 곳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녹십자는 알리글로의 매출이 본궤도에 오르면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통 제약사 현금부자는
27일 비즈워치가 매출 기준 5대 제약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현금성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을 보유한 곳은 유한양행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회사의 현금성자산은 3197억원에 이른다.
그 뒤를 △종근당(3010억원) △한미약품(1923억원) △대웅제약(1080억원) △녹십자(239억원)이 이었다.

현금성자산에서 갚아야 할 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 규모에서는 유한양행과 종근당의 위치가 바뀌었다. 지난해 말 종근당의 순현금이 1185억원으로 5대 제약사 선두를 기록했으며 유한양행은 464억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다른 제약사들은 모두 순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보유한 현금보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종근당과 유한양행은 두둑한 현금성자산을 바탕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의 R&D 신약개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4월 국내 바이오기업인 큐리진으로부터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의 글로벌 권리를 사들였다. 이보다 앞서 2023년에는 네덜란드 바이오기업인 시나픽스로부터 ADC(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 기술을 도입했다. 유한양행은 외부에서 도입한 후보물질의 임상시험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제2의 '렉라자'를 발굴하고 있다.
알리글로, 너만 믿는다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전통 제약사도 있다. GC녹십자는 자체 개발한 혈액제제인 알리글로의 미국 출시를 준비하면서 지난 5년간 차입금 규모를 큰 폭 늘렸다. 이 가운데 최근 2년간 순손실 적자를 기록하며 현금흐름은 악화하는 추세다.
녹십자는 지난해 7월 미국 시장에 알리글로를 출시했다. 이를 위해 녹십자는 충북 오창에 위치한 오창공장을 증설하고 미국 현지에 혈액제제 원료(혈장)을 제조하는 혈액원을 인수하는 등 관련 투자를 확대했다.
그 결과 녹십자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5년 전과 비교해 약 90% 감소한 23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5대 제약사 중 가장 낮은 규모다.
같은 기간 녹십자가 지난해 말 보유한 차입금은 7174억원으로 약 50% 증가했다. 5대 제약사 중 가장 많은 규모다. 지난 2년(2023~2024년) 연속 순이익 적자를 내며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2023년 54억원, 2024년 534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유동성 회복 여부는 알리글로의 미국 성과에 달렸다. 다행히 미국의 혈액제제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알리글로는 경쟁약보다 우수한 안전성으로 미국 시장에서 순항 중이다. 녹십자는 지난해 400억원 규모의 매출을 거뒀고 올해 1500억원의 매출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알리글로 미국 판매 순항 중으로 수익성과 현금흐름 모두 점차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