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선 생소한 세금 법안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사회 변화와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것으로 '감세(減稅)' 일색이던 연말 국회에 신선한 충격을 불어넣고 있다.
단순히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일부 세금 부담이 늘어나거나 느슨했던 법망을 조여주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긴 어렵지만, 분명 사회 전반에는 소금 같은 법안들이다.
◇ 에너지 쓰면 세금 내라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조세소위원회에서는 기후정의세법안과 탄소세법안을 심사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 파괴 등의 사회적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휘발유와 경유 등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나 개별소비세와 같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국제적 눈높이를 맞추려면 별도의 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들 법안은 각각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제출했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세부 규정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과세 대상은 모두 휘발유와 경유, 연탄, 전기 등이다. 박 의원의 기후정의세법안은 항공유와 나프타가 추가로 과세 대상에 포함돼 있는 반면, 심 의원의 탄소세법안은 기존 개별소비세 과세대상 유류와 똑같이 설정됐다.
기후정의세법안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대상으로 하고, 탄소세법안은 화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만 과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세율은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13.4원(기후정의세)과 6.7원(탄소세) 수준으로 매겨졌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10~20% 정도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명분은 충분하지만, 현실적인 논의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최근 사상 최악의 세수 부족 사태와 정부의 담배세금 인상 등으로 인해 증세를 향한 시선이 곱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 세금 신설은 '배 부른 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기업소득 환류세제와 법인세율 인상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만큼, 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높다.
◇ 부자 돈을 서민과 나눈다
양극화와 복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박원석 의원의 사회복지세법안은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많이 내는 개인이나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즉 부자와 대기업들이 내는 세금의 일부를 사회복지세 명목으로 더 걷는 것이다.
소득세를 1000만원 넘게 내거나 법인세가 100억원이 넘으면 20%를 사회복지세로 내야 한다.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각각 세액의 20%를 세율로 규정했다. 만약 소득세를 2000만원 내는 사람은 200만원의 사회복지세를 내고, 똑같이 증여세로 2000만원을 낸다면 400만원의 세금을 더 내는 셈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5년간 40조원의 세금을 충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복지 재원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도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주요 세목의 실제 세율을 인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개인과 기업의 세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국민적 합의가 없다면 실현하기 어려운 법안이다.
◇ 역외탈세 확실히 잡자
해외에 자금을 빼돌려서 세금을 피하는 '역외탈세'를 뿌리뽑기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역외탈세방지특별법(박원석 의원)과 조세회피처 남용 방지를 위한 특례법안(이인영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역외탈세자들을 효율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현행 세법이 해외금융계좌 신고 의무만 규정하고 있어 국세청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출발했다.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세금을 포탈한 사람은 더욱 무겁게 가중처벌하고, 역외탈세 신고 포상금도 50억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세청에는 역외탈세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국제과세정보분석원까지 두게 된다.
비슷한 취지의 조세범처벌법들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다만 국세청의 세무조사 권한을 너무 늘리면 납세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세청에 대한 수위 조절만 원만히 해결된다면 역외 탈세에 대한 처벌 규정은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통과될 전망이다.